[사람과 문화로 거리를 바꾸자 - 이중섭·솔동산거리 진단과 전망] (10·끝)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길

[사람과 문화로 거리를 바꾸자 - 이중섭·솔동산거리 진단과 전망] (10·끝)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길
도시를 잇는 그 거리에서 서귀포 미래 먹거리 키우자
  • 입력 : 2024. 10.10(목) 03:3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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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짧은 구간 문화자원 엮어 도심 생활권 걷기 좋은 코스로
관련 조례와 계획 작동 여부 등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이뤄져야
문화 기반 방문객 씀씀이 규모 적극 분석해 활용하는 작업을

[한라일보] 360m를 찬찬히 걸어 나오면 900m의 또 다른 길이 이어진다. 서귀포시 이중섭거리와 솔동산거리다. 특정한 거리명으로 불리기 전부터 서귀포가 흘러온 여정을 굽어본 곳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문화의 옷을 입고 새로 태어난 이래 시행착오를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완성형이 아닌 거리이기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들이 있다.

서귀포시에서 옛 서귀포관광극장 벽면을 활용해 야간 방문객을 위한 미디어 아트를 상영하고 있다. 사진=진선희기자



▶솔동산 유래 등 살린 상설 프로그램 운영을=이중섭거리와 솔동산거리는 그 명칭에 지역 정체성이 드러난다. 특화 거리나 문화의 거리가 되면서 화가 이중섭, 도시의 역사를 기억하는 솔동산을 각각 불러냈다. 지역의 인문 환경을 반영해 정체성이 만들어진 사례다. 알다시피 이중섭거리는 문화부에서 1995년 이중섭거주지에 미술의 해 기념 표석을 설치한 것이 계기였다. 이듬해인 1996년 서귀포시에서 거주지 인접 도로 360m 구간을 이중섭거리로 선포했다. 솔동산거리는 제주도에서 2009년 문화의거리로 지정했다.

두 거리는 서귀포의 명소를 조망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이중섭거리 야외 전시대가 있는 언덕배기에 오르면 서귀포 앞바다와 그 위에 떠 있는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뒤 허물어질 이중섭미술관 옥상에서도 인근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솔동산거리 끄트머리 '문화와 전통의 마을 송산동' 안내판이 설치된 곳에선 서귀포항, 새연교 등이 보인다.

이중섭미술관 옥상에 오르면 저 멀리 서귀포 바다까지 도심 전망이 한눈에 펼쳐진다.

다만 이중섭거리에 비해 솔동산거리는 방문객들이 그 배경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솔동산에서 태어났거나 그곳에 사는 주민들에 비해 외부인들의 공감대가 낮다. 과거 서귀진성 중심의 솔동산 유래 등을 살린 상설 프로그램이 없다.

도심 생활권에 조성된 이중섭·솔동산거리는 머무는 곳이자 흘러가는 곳이다. 이중섭미술관, 이중섭거주지, 서귀포관광극장, 서귀진지 등 남북 방향의 거리에 흩어진 문화자원들을 찾은 이들은 다시 주변 지역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래서 거리의 동서남북에 있는 볼거리, 즐길거리를 안내하는 등 도시를 잇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리의 언덕을 오르고 내리는 것에 비유해 인생 이야기를 입혀도 좋겠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인력만이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 거리 활성화를 지지하는 세력도 키워야 한다.

솔동산거리에 있는 대표 문화유산인 서귀진지.

▶작가의 산책길·문화의 거리 기본계획 언제쯤=이중섭거리와 솔동산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사업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반면 어떤 것은 소리 소문 없이 사업 기간이 끝이 났다.

서귀포휴양·예술특구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됐다. 특구는 지역 현실에 맞는 특화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주는 제도로 서귀포시는 전국 최초 휴양·예술 특구로 지정됐다고 홍보해 왔다. 작가의 산책길을 포함하는 문화예술 거리, 제주헬스케어타운, 스포츠 전지훈련의 메카를 위한 체육 인프라 구축 등 3개 권역으로 나눠 사업이 실시됐다.

조만간 신축을 위해 철거되는 이중섭미술관.

이중섭문화촌(서귀동 532-1 일원)은 이중섭미술관 시설 확충을 골자로 한 도시계획시설이다. 애초 2001년 2560㎡ 면적으로 결정됐던 이중섭문화촌은 최종 9101㎡까지 확장됐다. 2027년 3월 재개관을 목표로 둔 이중섭미술관 신축 사업에 따라 서귀포시는 지난 4일 이중섭문화촌을 변경 고시했다. 당초 준공 예정일이 2024년 12월 31일이었지만 기간을 2027년 12월 31일로 3년 늘렸다.

거창한 계획에 홀리기보다는 그것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꾸준한 모니터링과 함께 중·장기 발전 계획을 세우고 연도별로 점검해야 한다. 시작만 화려했던 몇몇 계획들을 닮지 않았으면 하는 거다.

이중섭거리 언덕배기에서 바라본 풍경.

2011년 서귀포시에서 개설한 작가의 산책길은 두 거리를 품은 매력적인 투어 프로그램이다. 기후 위기 담론 이전에 우리의 일상과 가까운 도심에 산재한 문화·자연자원을 엮은 걷기 코스다. 초반의 화제성에 비해 이즈음 산책길을 걷는 이들이 드물다. 관련 조례를 보면 도지사는 작가의 산책길과 문화예술시장의 효율적인 운영·관리를 위한 기본계획을 3년마다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작가의 산책길이 '하영올레' 등 그 거리를 거쳐가는 다른 이름의 길들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제3차 제주도 보행안전·편의증진 기본계획(2024~2028)과 어떻게 연계할지를 기본계획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문화의 거리 조례엔 해당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예술 축제 등을 연 1회 이상 개최한다고 했다. 문화의 거리 조성 기본계획을 짜서 공고한다는 내용도 들었다. 제주도 문화의 거리가 조례처럼 "도로를 중심으로 문화시설이 밀집되어 있거나 이를 계획적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지역, 문화예술 행사·축제 등 문화예술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지역"이라면 오늘날 솔동산거리의 모습은 그것과 동떨어졌다.

이중섭·솔동산거리를 합쳐서 1.2㎞가 조금 넘는 짧은 구간이지만 그곳에 서귀포의 미래 먹거리가 있다. 관광객들이 그 거리를 오가는 동안 지갑을 얼마나 열었는지 계산했을 때 문화를 동기로 삼은 씀씀이 규모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한꺼번에 수억을 쏟는 축제가 끝난 후 발표하는 경제적 파급 효과처럼 문화가 스며 있는 공간에서 소비하는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들여다봐야 하겠다. 코로나19 유행기 이전 기준으로 이중섭미술관 관람객이 한 해 25만 명에 달했다. 그 거리에 사람들의 발길이 모이도록 하는 게 서귀포라는 도시의 앞날을 밝히는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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