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문화광장] 동학과 서학이 교차하는 대구 관덕정에서

[김준기의 문화광장] 동학과 서학이 교차하는 대구 관덕정에서
  • 입력 : 2025. 03.25(화) 02:40  수정 : 2025. 03. 25(화) 13:02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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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대구에도 관덕정이 있다. 대구 읍성 남문 바깥으로서 조선후기에 연병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대구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유적지인 이곳에는 중죄인 처형장이 있었다.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도 이곳에서 순도당했다. 1860년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는 1864년에 대구 관덕정에서 처형됨으로써, 조선 후기와 한국 근대사를 뒤흔든 신생 종교의 교조로서 공인의 삶을 마감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가르치며 반외세의 기치 아래 평등사상을 펼친 동학이 종교로서 완성된 곳이라는 점에서 대구 관덕정은 천도교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사에서도 주목받는 곳이다.

반상과 적서, 남녀 등으로 갈라서 차별하던 조선의 계급사회를 부정하고 평등세상을 이야기한 동학은 민중의 열화와 같은 지지와는 달리, 양반사회에서는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다. 영남 유림의 발고로 인해 수운은 처형당했다. '좌도난정(左道亂政)'이라는 죄목이었다. 수운의 동학은 유교와 불교, 도교, 무속 등의 전통 사상과 종교를 통합하고, 일부 기독교 교리를 수용하면서 서학을 벤치마킹했다. 서학으로 불렸던 서양 기독교와의 대결 구도 아래 민족적 관점에서 동양과 서양의 새 판짜기를 시도한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자주와 평등과 생명을 이야기한 위대한 신생 종교 동학의 순교지로서 대구 관덕정은 각별한 역사유훈여행(다크투어) 장소다.

그러나 대구 현장의 상황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수운의 처형 장소인 대구 관덕정 인근에는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가 있다. 2017년에 설치한 것이다. 늦게나마 위대한 사상가의 순교비를 세운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장소성에 문제가 있다. 한민족 사상사를 완성한 위대한 성인의 순교비를 세우려면 정확한 고증에 따라 장소 선정을 해야하지만, 제 자리를 찾지 못해 백화점 건물 앞에 놓이고 말았다. 번잡한 대로변에 있는 이 순도비의 장소성과 규모에 비해 관덕정 자리에 있는 천주교의 관덕정순교기념관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서학에 맞서 동학을 창시한 수운의 순도비는 큰 길 건너 길가에 세워진 반면, 천주교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일은 선교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거창하게 이뤄졌다.

천주교의 순교 기림 사업이야 그들 나름의 뜻으로 진행한 일이나 뭐랄 수 없는 것이지만, 이웃 종교와 공존을 추구하는 종교평화의 관점, 한민족의 정신사를 기리는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큰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동학과 서학이 교차한 역사적 장소를 두고, 동학은 저 건너편 큰 길가에 자리잡을 수밖에 없는 현실. 서세동점의 근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몰려오는 회한을 주체할 수 없는 곳. 대구 관덕정 순교터에서 드는 감상이다. 이 순도비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어리둥절한 마음은 최근 다시 방문했을 때보다 더 커졌다. 역사유훈 여행은 이렇게 아픈 마음을 덧나게 만들기도 한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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