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신당설(神堂說)
[한라일보] 조천읍 와산리에 당오름이 있다. 표고 306.4m, 자체 높이 56m 정도다. 전체적으로 작은 편이며, 지형은 평평하다. 이 오름은 '북쪽에서 볼 때는 나직한 오름 형태가 뚜렷하나 남쪽 기슭으로는 느슨한 기복으로 하나의 구릉지대를 형성하면서 남향으로 넓게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지닌 화산체'로 표현된다. 1703년 탐라순력도 이래 일관되게 당악(堂岳)으로 표기했다. 주로 신당이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서쪽 밧돌오름에서 바라본 송당의 당오름. 오른 뒤는 달랑쉬오름, 왼쪽 뒤는 돗오름이다.
안덕면 동광리에도 당오름이 있다. 표고 473m, 자체 높이 118m 정도다. 꽤 큰 편이며, 정상은 커다란 분화구가 있고, 평평한 편이다.
지명에 대한 설명으로 '옛날부터 이름에는 당이 있어서 무당은 물론 주민들이 찾아 축원을 드리던 곳이라 당오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지금은 당 터의 흔적이 없다.' 제주도에서 발행한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대부분 오름 소개서와 탐방 안내서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사실은 1995년 김종철의 오름나그네라는 책에 처음 나온 이래 인용 표시 없이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 내용이다.
고전에서도 일관되게 이 오름은 당오름이라는 취지로 기록했다. 1709년 탐라지도를 시작으로 18세기 중반 제주삼읍도총지도까지 여러 고전에서 당악(唐岳)이란 표기가 나온다. 1899년 제주군읍지, 일제강점기 지도에는 당악(堂岳)으로 표기했다. 모두 다 당악(唐岳) 혹은 당악(堂岳)으로 표기했다.
당악(唐岳) 대 당악(堂岳)
어느 연구서에는 이에 대한 해석이라면서 제시한 바 있다. 우선 당(唐)과 당(堂)은 음가자 표기라고 했다. 이 말은 '당'이라고는 하는데, 그 뜻은 확실히 모르지만, 한자로 음이 같은 당(唐) 혹은 당(堂)을 썼다는 뜻이다.

동쪽 마을 안 송당리재활용도움센터 방향에서 바라본 송당의 당오름.
여기에 오름을 지시하는 악(岳)을 조합해 썼으니 당악(唐岳)과 당악(堂岳)은 한자 차용표기라는 취지다. 그러면서 당악(唐岳)을 나중에 당악(堂岳)으로 잘못 표기하면서 신당과 관련시키게 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당악(唐岳)이라는 표기가 당악(堂岳) 보다 이른 시기에 나오니 당악(唐岳)이 맞는 표기라고 보는 듯하다. 그러면서 '당(唐)'의 뜻은 미상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당'은 순우리말인데, 정작 그 뜻은 모르겠다는 것이다.
구좌읍 송당리에도 당악이 있다. 표고 274.1m, 자체 높이 69m 정도다. 비교적 작고 좁은 오름이다. 주위에 높은오름, 달랑쉬오름, 돗오름, 안돌오름, 밧돌오름, 체오름 등 쟁쟁한 오름들이 포진해 있어서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 오름의 지명도 고전에서는 한결같이 '당악'이라고 기록했다. 1703년 탐라순력도에서 1954년 증보 탐라지까지도 당악(堂岳)으로 표기했다. 1965년 '제주도'라는 책과 일제강점기 지도에는 당악(唐岳)으로 표기됐다. 이 지명의 뜻풀이도 문제다. 위에서 설명한 와산리의 당오름, 동광리의 당오름과 지명이 똑같다. 그런데 위에서 설명한 동광리의 당오름 지명은 '당악(唐岳)이 맞는 표기이며 당악(堂岳)은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저자는 송당리의 당오름의 경우 고전의 표기 중 '당악(唐岳)은 당악(堂岳)을 잘못 표기한 것'이며, 여기서 '당(堂)'은 신당(神堂)의 뜻이라 한다. 옛날부터 '당'이 있었던 데서 붙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주장을 더욱 뒷받침하려는 듯 '지금도 오름 서쪽에 송당 본향당(松堂 本鄕堂)이 있다'라고 부연했다.
송당, 좁고 평평한 오름
우선 송당리 '당악'을 좀 들여다보자. 송당리(松堂里)의 송당(松堂)이라는 지명은 17세기말 탐라도부터 1703년 탐라순력도를 비롯해 1899년 제주군읍지, 현재까지도 일관되게 나온다. 현지에서는 주로 손당 혹은 송당으로 채록된다.

동쪽 원물오름에서 바라본 동광의 당오름. 가운데는 정물오름, 가장 왼쪽은 금오름이다. 김찬수
이 지명 송당(松堂)에 대해 '송(松)은 '송' 또는 이의 변음 '손'의 음독자 표기, '당'은 '당'의 음가자 표기, 곧 당오름 소나무밭에 당이 있는데, 그 당을 손당 혹은 송당이라 하고, 주변 언덕을 손당마르(-旨)라고 한다. 이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란 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손당은 송당의 변음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내용은 '손당'은 '송당'의 음이 변한 것이므로 이 두 이름은 같은 것이라는 점, 당오름 소나무밭에 당이 있어서 송당(松堂)이라 한다는 점, 인근에 '손당마르'가 있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보았듯이 '당오름'이란 신당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했다. 그럼, 여기에 등장하는 송당마을, 당오름, 소나무밭, 송당이라는 신당, 손당마르 등의 지명 중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것은 어느 것일까? 설명대로 나열하자고 해도 서로 얽히고설켜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리고 위의 동광리 당오름과는 지명 해석이 완전히 뒤바뀐 이유도 풀 수 없게 돼 버렸다.
이렇게 버버작작(시끄럽게 떠들면서 말을 해 알아듣기 어려운 꼴이라는 뜻의 제주어) 돼버린 것은 해독의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원래 이 말의 뜻을 풀어야 하는데, 이차적으로 생긴 신당(神堂)에 너무 마음을 뺏겼기 때문이다.
'당'이란 '마라' 즉 마루에서 기원한다. 등성마루가 평평한 지형을 일컫는다. 이 지명은 이미 본 기획 원당봉, 좌보미, 당산봉, 저지오름 편 등에서 여러 번 설명한 바와 같다. 당산(堂山), 당악(堂岳)의 '당(堂)'이란 '마루 당'이다. 흔히 '당마루'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루마루'의 구조로 이중첩어다. 한편 송당(松堂)의 송(松)은 소나무와 관련이 없다. 면적, 폭 등이 좁다는 뜻의 순우리말 '솔'을 송(松)으로 차자했을 뿐이다. 당오름 혹은 당악(唐岳, 堂岳)이란 위가 평평한 오름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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