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제주군지, 저지가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한라일보]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산51번지 일대다. 표고 239.3m, 자체 높이 104m이다. 1682년 제주도지도에 저지리를 당지촌(堂旨村)이라 했다. 1703년 탐라순력도에 이 오름을 당지(堂旨)라 했다. 이후 여러 고전에 저지악(楮旨岳)으로 나온다.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에는 저지오름으로 표기했다.
1940년대에 석주명은 저지악을 '닥마루', '닥말오름'으로 채록했다. 이 지명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이 당지(堂旨) 혹은 저지(楮旨)다. 북제주군지에는 당지(堂旨)는 '닥마르'의 현실음 '당모르'의 한자 차용 표기라고 했다. 현실음이라는 것은 실제 현지인들의 발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원래는 '닥'인데 현지 사람들이 '당'으로 발음한다는 것이다. '닥'의 말음 'ㄱ'이 둘째 음절 초성 '마'의 'ㅁ'을 만나 비음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지(旨)'는 '마루'를 지시하는 것으로 본 기획 전 회의 모지오름 편에서 설명한 바와 유사하다.

동남쪽 명이동에서 바라본 저지오름. 김찬수
저지(楮旨)도 '닥마라'의 한자 차용 표기라 한다. 여기 '저(楮)'라는 한자는 '닥 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좀 아리송한 부분은 '저지(楮旨)'의 '저(楮)'는 훈가자 표기라는 설명이다. '지(旨)'는 훈독자 표기라 했다. 그러면서 '닥마르'의 '닥'이 '닥나무'라는 뜻인지, '높은'의 뜻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한 부분이다. '닥마르오름'에 '오름허릿당'이 있는데, 이 당이 있어서 '마르'라 하고, 나중에 '닥마르'로 이해해 저지(楮旨)라 했을 수도 있다고 보았다. '닥마르'의 한자 차용 표기가 '당지(堂旨)'와 '저지(楮旨)'로 나타날 뿐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이 내용은 북제주군이 펴낸 북제주군지에 나온다. 이 글의 결론은 저지리의 '저지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라는 것이다.
위가 평평한 지형이면 '마루'
그런데 앞에 보면 '저지(楮旨)'의 '저(楮)'는 훈가자 표기라고 했는데, 훈가자라는 말은 그 뜻은 상관없고 그저 훈의 음만 취한다는 차용 방식을 발한다. 그렇다면 훈가자 '저(楮)'가 무얼 지시하는지 밝혔어야 한다. 독자는 잔뜩 기대를 걸고 읽어 내려갔는데 결국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저 한자표기가 '당지(堂旨)'와 '저지(楮旨)'로 나타난 적이 있었다는 것만 알겠다라는 것이 이 글의 요지다. 이게 북제주군지의 지명 유래 설명이다.

서쪽 조수1리에서 바라본 저지오름. 김찬수
우선 '당마루오름'에 '오름허릿당'이 있어서 '당마르오름'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당(堂)'이란 무속에서 신을 모신 곳이나 무당이 신을 모시고 굿을 하는 곳 등을 말한다. 그러니 당마르오름의 '오름허릿당'이란 이곳에 마을이 형성된 후에 만들어졌다고 함이 논리상 타당하다. 그것도 무속이 성행한 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오름의 이름이 먼저지 당의 이름이 있고 나중에 오름의 이름을 지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저지라는 마을 이름도 오름이 먼저 있고 나중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마을 이름 '저지'라는 지명은 이 오름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 이 오름은 무슨 뜻일까? 오름이 됐든 여타의 지형 지명이든 우선 그 본질적 특징에서 기원하기 마련이다. 이 오름은 위가 평평한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위가 평평한 지형을 제주 지명에서는 대체로 '마루'라고 한다. 고어로는 '마라'라거나 '마르', 현대에 들어 '마루'가 됐다. 본 기획 '모지오름', '차귀오름' 등에서 설명했다. 차귀오름은 당오름(堂-). 당산(堂山), 당악(堂岳)이라고도 한다. 모지오름도 등성마루가 평평하다. 이런 지형을 어느 시기에 '무루' 혹은 이게 축약한 '무'라고도 했으며, 이 말이 축약한 '모', '무'로 변하여 '무지오름' 혹은 '모지오름'으로 된 것이다.
저지리(楮旨里)와명이동(明理洞)은 같은 기원
제주 지명에 '당'이 들어간 예는 참 많다. 신기한 것은 이 글자를 풀이하면서 전문가든 그렇지 않든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이들 거의 십중팔구는 무속에서 말하는 당(堂)으로 풀이한다는 점이다. '당(堂)'이란 '집 당'이기도 하지만 '마루 당'이기도 하다.

북서쪽 널개오름에서 바라본 저지오름. 김찬수
1682년 제주도지도에 당지촌(堂旨村)이 나오고, 1703년 탐라순력도에 지금의 저지오름을 '당지(堂旨)'라 한 것은 '마르마르'라는 뜻이다. 이중첩어구조 지명이다. 오늘날 오름 지명에 '~오름'이라고 붙이는 것을 당연시하지만 당시는 위기 평평한 지형을 그냥 '마르'라고 했을 뿐이다. 굳이 한자로 표기한다면 '당(堂)'이라고 할 수도 있고 '지(旨)'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명이란 대체로 두 음절로 쓰는 관행이 있었다. 어쩌면 기록자가 '마르'라고 하는 현지인의 발음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걸 한자로 표기하면서 '당지(堂旨)'라 한 것이다.
'저지(楮旨)'라는 지명은 1709년 탐라지도병서라는 문헌에 처음 나타난다. 이 지명은 '당마르'라는 현지인들의 발음을 '닥마르'라는 발음으로 이해해 차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저(楮)'라는 글자를 동원한 것은 그저 음만 빌어 온 것이지 그 닥나무라는 뜻과는 무관하다. 음가자 차자 방식이라 한다. 저지리의 지명변화는 저지리 향토지에 잘 정리돼 있다.
한편 '마르'는 '미', '뫼'로도 축약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마르'를 축약해 '밍이', '멘이', '멩이' 등으로도 발음하게 된다. '명이동(明理洞)'의 '명이'는 '마르' 가까이 있는 마을의 한자 차용 표기다. 본 기획 어도오름 편에 나오듯이 어음리의 하동을 '부멘이' 혹은 '비멘이'의 '멘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저지리와 명이동은 어원상 같은 이름이다. 저지오름은 닥나무와 무관하다. 위가 평평한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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