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떵살암수과]'중섭식당' 주인 이태중씨"없는 사람 처지, 없는 이가 잘 알아요"

[어떵살암수과]'중섭식당' 주인 이태중씨"없는 사람 처지, 없는 이가 잘 알아요"
[어떵살암수과]'중섭식당' 주인 이태중씨
  • 입력 : 2011. 12.24(토) 0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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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거리에서 '중섭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태중씨가 예전 간판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기고 있다. /사진=이현숙기자

숙식 해결위해 요리 배우기 시작해
이중섭거리에 식당 차려 나눔 실천
춥고 배고픈 장애인 등에 무료 급식

얼마 전까지 이중섭거리에는 10년 넘게 이런 나무간판이 걸려 있었다. '중섭거리 중섭식당에는 중섭이 없다. 중섭이를 닮아가는 태중이형이 세월을 팔고 있다.'

얼마전 이중섭거리가 정비되면서 이 간판은 한켠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의 주인장은 이태중(59)씨. 이미 이중섭거리를 다녀간 이들에게서는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다. 식당이름과 간판, 말솜씨, 음식솜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따뜻한 나눔을 펼치는 그의 성품 때문이기도 하다. 애저회, 순대국밥, 고기국수, 몸국 등을 팔고 있다. 손님들은 대부분 그를 '중섭아저씨'라고 부른다.

지난 22일 그를 찾아갔다. 간판뿐 아니라 허름했던 공간은 말끔해져 있었다. 어색하기는 주인장도 마찬가지. "돌과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 많았던 예전이 더 좋아." 어쩔 수 없이 고치기는 했지만 못내 아쉬운 듯 했다.

절기상 '동지'여서 그는 큰 냄비에 메뉴에도 없는 팥죽을 쑤고 있었다. "주위사람들 불러서 함께 먹으려고 한솥 쑤는데 아직 풀어지지 않아서 떠줄 수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가족사의 아픔이 있다. 아버지는 황해도 출신으로 생사를 알지 못한다. 어머니와 함께 이산가족찾기에도 나가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만큼 어릴 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졸업 후 학업을 중단하고 돈을 벌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 도착한 그는 한 식당에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부산에 가니깐 막막하더라구요. 먹고 자는 게 가장 큰 문제였죠. 이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식당이었어요. 그곳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돈이 없는 장애인들은 배고프면 이곳을 찾는다. 그러면 그는 따뜻한 밥을 내어주고 돈도 받지 않는다. 장애인들이 오면 옆자리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지만 그냥 일어나 가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씨는 장애인이나 어려운 이웃들의 방문을 끊을 생각이 없다.

함께 주방장 일을 했던 친구가 혼자 살게 되면서 병을 얻었고 그는 매일같이 밥을 챙겨줬다. 그렇게 6개월 선고를 받았던 친구는 9개월이 지나 하늘나라로 갔고 그는 결국 장례까지 치러 주었다. 한참 뒤에야 알고 찾아온 형제들은 이씨에게 큰절을 하고 고마워했다.

1998년 이중섭거리에서 식당을 시작할 당시 그 동네 출신인 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갑자기 뇌경변 증세를 앓으면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런 어머니를 집에 혼자 놔둘 수가 없어 그는 매일아침 업고 높은 오르막길을 올랐다. 그의 어머니는 결국 4년전 세상을 떠났다.

"언젠가 몸이 아파 입원했던 적이 있었죠. 그런데 식당에 와서 늘상 밥을 먹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않았던 한 장애인이 그 소식을 듣고 과일을 사갖고 왔더라구요. 참 고마웠죠. 없는 사람들 처지는 어려운 사람들이 알아요. 경제적으로는 힘들어도 이런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게 행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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