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8)조천읍 조천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8)조천읍 조천리
행복지수 1번지를 추구하는 건강.문화마을
  • 입력 : 2022. 07.22(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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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그 어떤 마을 이름이 이토록 장엄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지닐 수가 있을까! 조천(朝天)―아침 하늘. 밤이라는 어둠에서 밝음을 불러오는 아침 하늘을 마을 명칭으로 삼은 조상들이 대대손손 전하고 싶은 염원이었을 것이다. 어둠이라고 하는 것이 상징하는 사악하면서도 혼돈스러움을 걷어내고 모든 선하고 긍정적인 밝음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마을공동체의 이념, 그 자체가 마을 명칭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릇됨은 어둠이라 아침 햇살과 같은 밝음으로 이를 퇴치하고 몰아내야 한다는 묵시적 불문율이 지배하는 마을이었기에 3·1만세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의 최고 지점을 설정하고 그 밝고 높은 이상을 향해 살고자 했던 분들의 터전을 숙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마을이다. 세종 21년 1439년 이전에 이미 조천관이 설치돼 있었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기지로써 군진의 기능을 수행하던 곳. 해상활동에 있어서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해변 구조가 만처럼 들어와 있는 구조이면서 포구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자연적인 요소가 갖춰져 있는 장점을 조상들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화북포와 함께 제주와 육지를 연결하는 관문의 역할을 오랜 세월 해왔기에 외부의 세상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작 명의 제후국 조선에 의해 자행된 출륙금지령 200년 기간 동안, 육지에서 오는 숱한 배들을 바라보면서 이 섬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육지로 나가지 못하는 서러움을 가장 가까이서 느껴야 했던 마을이다.

역사 인식이 있다는 것은 높이 올라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극명한 입장과 실천의지를 보여준 것이 바닷가 용천수 자원을 지키기 위해 해안도로를 거부하고 옛 해안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쉬운 결정이 아니다. 개발이라는 논리 앞에 더 큰 가치로 이겨낸다는 것.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에 의하면 용출량이 풍부한 담수가 솟아나는 곳이 33곳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여건이 있었기에 대촌의 면모를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수돗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시대에 이러한 용천수 자원을 보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조천리 주민들은 자연을 지키는 방향으로 결정했으며 이를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급속한 발전 욕구에 의하여 돌이킬 수 없는 오판을 하게 됐을 경우, 이는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조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겁게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하다. 마을에서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용천수탐방길은 해변의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모습을 음미하고자 하는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보존의 가치가 경제적 성과로 옮아가는 중이다. 강연식 이장이 밝히는 조천리의 가장 큰 공감대는 간명하게 '삶의 여유'다. 마을 사업으로 사우나를 운영하고, 헬스장과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는 문화 향유 프로그램 등 거창한 사업목표에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질은 여유로움에서 높이고자는 하는 의지로 읽힌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 중에 조상 대대로 살아온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서로 돕고 살아가는 삶이 있다. 개인적 이기주의가 결코 발붙일 수 없는 그런 사회.

마을공동체가 보유하고 있는 유형무형의 자산을 가장 큰 생산성으로 견인하는 방법을 모색해 실천하는 조천리. 차별성이 경쟁력이라는 것을 끈기를 가지고 입증하려는 결기가 보인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판단을 할 수 있는 역량의 소산이라지만 그 논의 과정은 참으로 많은 토론과 고민을 통하여 결정된 방침들이다. 미래를 앞당기려는 성급함이 설자리가 없어 보인다. 차곡차곡 여유를 가지고 만들어가는 조천리의 미래가 있을 뿐.

해 뜨기 전, 새벽에 연북정에 올라 동녘하늘을 바라본다. 朝天이다! 세상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아침 하늘이 밝아온다. 치암(癡闇)은 어리석은 자들의 어두운 생각과 행동이다. 이를 물리치는 아침 하늘 밝은 햇살은 현명함이요 지혜로움이거늘. 한 개인의 똑똑함이 아니라 마을공동체가 집단적으로 현명한 길을 가고자 한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신적 보배. 조천리는 그 보물이 있어 풍요롭다.



아침햇살 눈부신 비석거리
<수채화 79cm×35cm>

조천은 제주 역사의 거목(巨木)이다. 거목이 상징하는 걸출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해 각계각층서 우리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토양을 끊임없이 제공해온 마을이기에 중의적인 의미로 합당한 표현이다. 비석거리에 서서 묵묵하게 마을 주민들의 희로애락과 함께 해온 오래된 팽나무를 바라보며 '아침하늘'-조천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그리게 됐다. 나무가 화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해를 가렸는데 햇살의 강도는 더욱 크게 느껴지는 아이러니를 표현하려고 했다. 맹하의 풍성한 잎사귀들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작은 빛들이 마치 별들이 빛나는 모습과 흡사하다. 길과 하늘에는 어떤 채색도 하지 않았기에 흰 여백 자체가 빛으로 가득한 아침세상이 됐다. 하늘이 세상을 연다면 그 뜻에 따라 빛이 열리도록 비석거리 팽나무가 도왔을 뿐이다. 비석과 팽나무들을 제외한 집들은 명도를 밝게 하여 빛 속에 파묻힌 느낌이 들도록 했다.

살짝 경사가 진 길이 여섯 방향으로 나있는 6거리. 제주 농어촌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경우다. 비석의 내용들을 살펴보니 조선시대에 제주목사나 판관을 지냈던 자들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들이다. 이런 공치사를 조천포구 가까운 곳에 위치를 잡은 이유 자체가 당시의 시대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실이 된다. 그만큼 조천포를 통해 육지와 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는 것. 당시로써는 번화가에 속하는 곳에 세워서 많은 사람들이 알라고. 조천이 알고 있으면 제주섬 전체가 알거라는 심산으로.



설문대여신 전설 얽힌 엉장매
<수채화 79cm×35cm>

섬 제주의 백성들은 육지까지 연결된 다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한 서린 마음으로 살았다. 이를 설문대할망에게 애원했더니 '명주 5000필이 들어가는 큰 속옷을 만들어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이에 사람들은 모여들어 속옷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명주가 모자라서 완성하지를 못했다. 그러자 조천리 바닷가에서 육지까지 다리 놓으려 이렇게 작업하던 설문대할망은 떠나고 말았다는 전설. 그 흔적이 조천바닷가 '엉장매'. 바다로 길게 뻗어나간 높은 현무암 암반층을 다리 공사의 시작점으로 보는 민중적 염원. 아침하늘-朝天에 강렬한 태양이 떠오른 날에 원담이 드러나는 썰물 시간에 맞춰서 그렸다. 제주의 관문 역할을 했던 조천포에서 들려오는 한반도와 관련된 제주와는 다른 이야기들로 인해 막연한 동경과 선망의식이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에서 신화적 상상력을 빌어 전설로 자리 잡았다. 회자돼 구비전승 되는 데에는 일상적 현실 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조천리의 역사는 육지에서 온 이방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몇 곳 안 되는 지역이었다. 엉장매 전설은 조천리가 보유한 매력적인 스토리텔링 자산이자 독특한 관광자원이다. 단순하게 바닷가 전망대 정도로 파악해 여타 지역과 대동소이한 조경용 데크시설과 정자를 설치해 신화적 이미지를 파괴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크게 보면 제주의 소중한 스토리텔링 자원이기 때문에 제주도정 차원에서 적극적인 관광자원화 정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시각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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