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심사평] 소설부문 - 김동승

[2023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심사평] 소설부문 - 김동승
  • 입력 : 2023. 01.02(월) 00:00
  • 오은지 기자 ejo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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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김동승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기회를 찾다"

'그때가 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고 내게 주어진 실패를 씁쓸하게 받아들이며 늙어갈 뿐이겠지. 하지만 내가 결정한 것을 기어코 하고 말았다는 추억 하나만은 고이 움켜쥐고 있을 테지. 넘어지며 고민했던 시간이 남을 것이고, 추억이 희미해질 무렵 실패한 글 속에서 설익은 생각들을 꺼내 읽으며 혼자 피식하고 웃을 테지. 이 정도면 나는 만족해.'

나는 실패하고, 또 실패할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처음으로 완성한 단편소설의 결말이다. 나와 똑 닮은 주인공은 어느 날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원인을 찾아 헤매지만, 불행이란 때론 그런 것 없이 찾아오기도 하는 법이다. 불행은 종종 신기한 현상을 동반하는데, 머릿속의 소리가 사라지니 비로소 마음속에 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소설이란, 작가란 존재는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려 했다. 그러다 문득 이제껏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해야 하는 것만 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순간에도 고독하게 자판을 두드리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을 모든 분에게 고한다. 세상이 당신을 모르고, 설령 부정한다 해도 당신만은 자신을 믿어야 한다.

많은 분께 빚을 지며 이 소설을 썼다. 먼저 귀한 이름을 빌려준 내 친구 덕수와 래신, 합평에서 귀한 의견을 내준 200칸 이야기 문우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내 지순과 내 딸 수현에게 감사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계속 실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과 한라일보에 감사한다.

▷1985년 서울 출생 ▷숭실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심사평] 절제된 호흡... 인간성에 대한 따뜻한 시선 인상적

심사위원: 임철우(소설가) 김동윤(문학평론가, 제주대 교수)

본심에 오른 여덟 편의 작품은 예년에 비해 부쩍 높아진 수준을 보였다. 한라일보 신춘문예의 인지도가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들 대부분이 각기 다채로운 소재만큼이나 개성적인 문장, 이야기를 다루는 감각 등에서 상당한 습작량을 거쳤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구멍'은 에어컨 설치보수 기사인 주인공이 허공에서 지상을 내려다볼 때마다 마주치는 '작고 검은 구멍'이라는 소설적 모티프가 인상적이다. 다만 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는 차분한 호흡은 좋았으나, 구성의 단순함, 다소 매끄럽지 못한 문장력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저녁의 무게' 역시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무난하게 끌어가긴 했지만, 소재나 인물 설정에서 일단 신선감이 부족했다. 흔히 가정폭력을 주제로 다룰 때마다 전형적으로 제시되는 남성 인물형,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폭력적인 장면, 시종일관 고정되어있는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 등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곶'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만난 4명의 인물 들이 동반 자살을 위해 세모의 바닷가 팬션에 모여 보내는 하룻밤을 그리고 있다. 극적 긴장감을 내포한 스토리 설정, 무리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에서 소설적 감각이 엿보인다. 요컨대 이 소설의 핵심은 과연 무엇이, 왜, 어떻게 그들을 이곳까지 스스로 찾아오게끔 내몰아왔는가, 즉 인물들의 내면을 얼마나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드러내느냐에 달려 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그 점에서 밀도가 부족했다. 인물의 동기와 내면의식에 대한 보다 치밀한 탐색이 아쉬웠다.

'7챔버에서 부는 바람'은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단단한 주제의식이 돋보였다. 노동현장의 실상과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폭력적 구조에 대한 세밀한 서술, 예리하고 절제된 시선, 완숙한 문장력 등에서 만만찮은 저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런 장점들을 작품 안에 충분히 유기적으로 담아내지 못한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특히 전반부의 많은 분량을 물류센터 및 작업시스템에 관한 세세한 설명에 허비해버린 탓에, 정작 후반부에선 본격적인 이야기를 제대로 다룰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스토리 얼개 자체가 단편보다는 중·장편에 더 적합한 소재가 아니었나 싶다.

당선작 '기적의 남자'의 미덕은 무엇보다 소설로서의 안정감과 절제된 균형감각을 마지막까지 일정하게 유지해 냈다는 점에 있다. 신인 작가로서 그것은 분명 만만찮은 솜씨이다. 단정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 차분하고 절제된 호흡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감각, 또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따뜻한 시선이 신뢰감을 안겨 준다.

사실 '복권'의 상징성이란 일견 너무 빤하고 식상한 것이어서 자칫 위험한 설정일 수도 있었다. 게다가 주인공은 1등 당첨된 복권을 긁어보기 직전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뒤늦게야 깨어난 노인이라니!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 소설은 가벼움, 진부함, 우연성 남발, 센티멘탈리티 같은 함정들을 가볍게 뛰어넘어, 저만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펼쳐내고 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인 기적 씨 덕분이다. 정신병원이라는 어둡고 암울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작품 분위기가 어딘지 밝고 투명한 느낌을 주는 것도 기적 씨라는 캐릭터의 힘이다. "기적 씨의 치료가 기괴한 삶의 연장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죽음과 더 가깝다는 것" - 그 기이한 삶의 역설을 전하는 작가의 잔잔하고 차분한 목소리에는 은연중 따뜻함이 묻어나온다. 새해 첫날 아침의 지면에 모처럼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당선자께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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