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얼마 전 한 학술행사에 참석했다. 주최 측 인사말을 듣다가 한 가지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바로 '불구'였다. 힘든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무심코 사용했겠지만, '불구'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지체 장애라고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인사말에서 불구 대신 지체 장애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힘든 상황을 장애인의 상황과 비교함으로써 장애는 문제이고 어려움이라는 인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장애를 다름으로 보고자 하는 장애 운동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지양돼야 한다.
미술 작품에서도 종종 이러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테르 브뤼헐(Pieter Brueghel de Jonge)의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작품도 바로 이런 사례이다. 이 작품 역시 첫 번째 문제는 용어 사용에 있다. 용어 문제는 외국어 작품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이 작품을 소개하는 책이나 글에서는 영어 제목 'The Blind Leading the Blind'에서 'Blind'를 주로 '장님'이나 '맹인'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장님'이나 '맹인'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이다. 물론 '맹인'에 있어서는 다른 의견도 있지만, 컴맹, 문맹과 같이 맹(盲) 즉 시각장애가 무능력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하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기존 작품 제목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Blind'를 '장님'이나 '맹인' 대신 '시각장애인'이라고 번역했다.
작품 내용의 측면에서도 고민해야 할 점이 있다. 원래 이 작품의 내용은 성경 내용과 연관이 깊다. 마태복음 15장 14절에는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라고 적혀있다. 이때 맹인은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비유한다. 이러한 비유로 예수님은 위선자인 그들이 사람들을 이끄는 당시 상황을 경고했다. 브뤼헐이 살았던 16세기나 지금도 예수님 당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그의 그림이 계속 이야기된다. 그러나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비유는 시각장애인에 관한 부정적 시각을 바탕으로 하기에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시각장애가 있어도 사람들을 잘 인도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시각장애인'이라고 검색하면 위에서 소개한 브뤼헐의 작품을 찾을 수 없다. 여전히 '장님'과 '맹인'을 작품 제목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 병리 현상을 장애인의 상태에 비유해 작품을 표현하기도 한다.
예전에 사용했던 이러한 비유까지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비유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미술계가 이러한 문제를 민감하게 바라보고,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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