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제주를 사랑하는 호러 작가 7명이 의기투합한 앤솔러지 '고딕x호러x제주'가 출간됐다.
4·3을 소재로 한 '해녀의 아들'로 2023년 한국추리문학상 제17회 황금펜상을 받은 박소해 작가의 기획에서 시작된 책이다.
'장르 소설이 사회와 역사를 다룰 수 있을까'를 고민한 앤솔러지답게 호러 소설만의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설문대할망과 그슨새, 애기업개 등 제주의 신화와 민담부터 이재수의 난, 결7호 작전, 4·3 등 역사적 자료를 찾아 새롭게 해석했다.
책엔 빗물의 '말해줍서'(애월읍 빌레못 동굴), WATERS의 '너희 서 있는 사람들'(한경면 차귀도), 이작의 '청년 영매-모슬포의 적산가옥'(대정읍 모슬포항), 박소해의 '구름 위에서 내려온 것'(송악산 해안 동굴 진지), 홍정기의 '등대지기'(이어도), 사마란의 '라하밈'(중문동 도레 오름), 전건우의 '곶'(신례리 숲 터널) 등 아름다운 섬과 섬에 깃든 그림자, 그 환상과 현실을 조율해 낸 7편의 이야기가 묶였다.
"제주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했을 때, 4·3이라는 사건을 말하지 않을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빗물 작가는 "캄캄한 산속 동굴에서 단절되었던 어머니와 할머니의 아픔을 만난 수연처럼, 저도 깊고 어두운 곳에서 갇힌 순간 누군가의 얼굴을 찾아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작가 WATERS는 '작가의 말'에서 마침 호종단 물길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정하고 그 일로 분노한 신이 바로 광양당신이라는 자료를 찾았지만 끊어진 물길을 다시 돌려놓았다는 이야기는 찾아도 없었다(검색 능력의 한계일지 모른다는 첨언과 함께)고 떠올렸다. 작가는 "거기서 '수호신이 만약 뒤틀렸다면, 뒤틀린 채로 오랜 기간 지내왔다면? 하는 발상을 떠올렸다"면서 거기에 '주'에 나오는 집성촌과 의문의 제사를 집어넣고, 취향인 탐정물도 아주 조금 끼얹었다고 소개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저항했던 제주인에 대한 글을, 일말 팔천의 신들이 있다는 무속 얘기로 써보고 싶었다는 이작 작가는 "이 글을 쓰다가 등장하는 신들이 사람을 보호한다는 공통점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홍정기 작가는 "비록 무대는 제주이나 심각한 사회 문제인 청년 실업과 절박한 이들을 이용하려는 어른들의 비정한 논리를 호러라는 장르를 빌어 꼬집어보려 했다"며 "사건과 무대는 픽션이지만, 이야기의 본질 자체는 현실과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마란 작가는 "무늬만 천주교 신자이지만 언젠가 구마 소재의 작품을 쓰고 싶었는데 이 기회에 세상에 선보이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제주와 고딕, 언뜻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연결하면서 어떻게 하면 제주만의 특성을 살린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곶'을 떠올렸다"는 전건우 작가는 고딕 장르와 닮아 있는 곶에 제주의 전통 요괴인 '그슨새'를 접목해 '호러' 본연의 맛도 살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책을 기획한 박소해 작가는 "제주색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 작품마다 제주도 신화와 민담을 소환했다"면서 "장르 소설도 사회·역사적인 이슈를 다룰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제주의 설화와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애월, 모슬포항, 송악산, 숲 터널 등 익숙한 지명을 따라 독자들을 제주 반 바퀴를 도는 여정으로 이끈다.
출판사는 "아름다운 현실의 섬과 서늘한 공포의 경계로 우리를 천천히 빠져들게 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빚은책들.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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