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6일 진행된 '2024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14차 행사에 함께한 참가자들이 말찻오름을 오르기 직전인 삼다수숲길에서 잠시 쉬면서 아직도 울긋불긋하고 노랗게 물든 단풍을 구경하고 있다. 오승국 시인
교래-가시-수망 세마을 넘나들어
잘 보존된 가친오름 4·3주둔소도
마흐니오름 주변은 화전마을 보고
[한라일보] 마지막 단풍잎이 아련하게 떨어지며 짧은 가을이 지나간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가을숲에서 느끼는 적막함과 허허로움은 숲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가난한 감정이다. 그 가난은 곧 행복한 감성으로 금세 바뀐다.
한잔의 깡소주를 홀로 들이키며 아찔하게 생각을 버리는 사람도 가을과 겨울의 인터체인지 같은 11월의 마지막 계단을 밟고 가는 중이다.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추운 겨울 바람찬 벌판에 쌓인 눈속이라도 살아 있으니 우리는 이 숲을 걷는 것이다.
지난달 16일 진행된 한라일보의 '2024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14차 행사는 삼다수숲길, 말찻오름, 가친오름 4·3주둔소, 마흐니 둘레길로 이어지는 14km의 4·3역사의 길을 걸었다. 특히 이날 트레킹은 조천읍 교래리, 표선면 가시리, 남원읍 수망리로 이어지는 의귀천변, 천미천변과 70년대 조림된 울창한 삼나무숲 그리고 구간 구간마다 마지막 붉은 색감을 보여주는 단풍이 아름다운 구간이었다.

개옻나무

노란다발버섯

미역취
삼다수숲길은 오래전 사냥꾼과 목동들이 이용했던 오솔길을 제주개발공사와 교래리 주민들이 조성한 숲길이다. 봄에는 복수초 군락, 여름에는 산수국, 가을에는 천미천변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다. 교래리 삼다수숲길 주차장에서 첫발을 내딛는다. 조금은 흐린 날씨여서 선선한 가을바람이 오히려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푸른 색감을 보여주는 목장길과 경찰숲을 지나 물찻오름 방향으로 들어섰다.

좀딱취

황갈색시루뺀버섯

콩제비꽃
삼나무의 푸르른 색깔과 높이가 장엄한 바다를 보는 듯 하다. 삼나무 밑에는 어린 참식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다. 길가에는 편백, 단풍, 붓순, 산뽕, 빗살, 상수리 나무 등이 늘어서 있고 예덕나무는 노란 단풍잎을 위태롭게 달고 있다.
삼다수숲길을 치고 오른다. 말찻오름 정상이다. 말찻은 아래에 있는 잣이라는 뜻이다. 정상부에 나무가 어우러져 전망이 트이지 않지만 물찻오름이 살짝 보인다. 4·3당시 물찻, 말찻, 산란이(궤펜이)오름 중간지대에 남원, 조천, 표선면 주민 2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피신생활을 했다. 말찻오름 일대에는 마흐니오름에서 이동해온 무장대의 2차사령부가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동부지역 최대 피신처였다. 오름 정상에는 가막살과 찔레 열매가 붉게 물들어 4·3사건의 무수한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듯 처량하다.
해맞이길로 하산해 사려니숲길을 잠시 걷다 가친오름 쪽으로 향했다. 좌우로 의귀천의 지류에 갇혀 있어 불리어진 이름이다. 지형적으로 마흐니와 붙어있다 보니 한때는 '마흐니 옆'으로 불리기도 했다. 활엽낙엽수인 서어, 졸참, 산딸, 때죽, 단풍, 참꽃, 쥐똥, 윤노리, 산벚나무가 가득한 자연림 중간중간에 아름드리 삼나무와 소나무가 유별나게 푸르다.

큰방가지똥

흰테꽃구름버섯
굴무기와 산벚나무 밑에서 숲의 동무들이 오찬 공동회를 잠시 즐겼다. 식물에 조예가 깊은 한 참가자는 느티나무의 제주어인 굴무기 나무는 "딸이 시집갈 때 석별의 선물로 주려고 아버지가 궤를 만드는 재료로 썼다"고 들려주었다.
오래된 유적처럼 4·3주둔소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가친오름 4·3주둔소는 1952년 초 경찰주둔소로 구축됐다. 전체적인 모양은 삼각형인데 성담 높이는 2m 가량이며, 삼각 꼭지 3곳에 초소가 있고 출입구는 남쪽으로 나 있다. 현재 외곽 돌담에 약간의 훼손이 있으나 내부 집터도 확인 가능하고 집자리 옆에는 솥덕도 남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성을 쌓은 후, 경찰특공대의 지휘 하에 토벌을 다녔는데 인근 마을에서 올라와 이곳에 집결하고는 토벌작전에 투입됐다고 한다. 4·3당시 고난의 세월을 보여준다.

오승국 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장>
의귀천 상류의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소(沼), 잣담과 구분담, 용암대지, 돌담 4·3아지트 등이 보이는 마흐니숲으로 들어섰다. 정상부 반대편엔 마흐니궤, 수직동굴을 볼 수 있다. 마흐니오름 숲속은 4·3당시 의귀, 수망, 한남리 등 남원읍 주민들의 최대 피신처이자 무장대의 은거지이기도 했다.
마흐니오름 주변은 화전마을의 보고이다. 장구화전, 신비지동, 묵지화전, 영아화전 등이 산재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와 4·3사건을 겪으며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도 수망리에는 화전마을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애잔히 전해지고 있다.
붉게 물든 사람주나무의 가녀린 잎새와 억새의 흔들림에, 고통의 역사속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을 떠올리며 파헤쳐진 마흔이 앞밭 대지를 건너 오늘 걸음의 종을 울렸다. <오승국 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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