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무겁게 내려앉은 검푸른 구름이 겨울 새벽하늘을 덮었다. 그 사이를 날아온 까마귀가 앙상한 멀구슬나무 가지에 날개를 접더니 도요를 불러댄다. 전깃줄 너머 보이는 한라산 자락에도 눈이 쌓였다. 검은 고양이가 엎드려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돌담 아래는 수선화가 찬바람에 한들거린다. 찬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한 겨울에 꽃을 피웠기에 제주의 수선화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금잔옥대(金盞玉臺)다. 옥처럼 하얀 받침대에 노란 금잔이 올려졌다는 의미다. 가끔 코끝을 스치는 그윽한 향기는 겨울이어서 참맛이 나기는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이런 이름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제주에는 집 주변이나 밭에 지천으로 널려 있어서 잡초로 취급됐다. 이처럼 멋진 이름이 붙여진 것은 추사 김정희 선생과 많은 사람 덕분이다. 그런데 갑자기 금잔옥대 수선화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그 이름에 걸맞은 존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2024년 세밑을 향하고 있는 요즘 돌담 아래가 아닌 길거리에 수많은 금잔옥대가 피어나고 있다. 손바닥에 임금 '왕'자를 썼던 자가 진짜 왕이라도 된 듯 지난 3일 밤 계엄령을 발표했다. 헬기가 국회로 날아들고 군인들이 몰려들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국민을 자신의 재산쯤으로 여길 요량이었을 것이다. 권력도 자기들끼리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착각이었다. 평소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일이면 나아질 거라고 여기며 묵묵히 생활하던 갑남을녀들이 장갑차를 가로막았다. 공동체보다는 자신만을 생각한다고 여겨졌던 젊은이들이 계엄군들을 막아섰다. 총부리 앞에 선 그들에게는 반짝이는 응원봉들이 들려 있었고 온몸으로 노래하며 맞섰다. 광장에 흘러넘치는 생기를 경험한 이들은 거대한 물결에 스스로 놀랐을 것이고, 세계도 놀랐다.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을 숨죽이고 지켜본 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벅찼다. 어디 그뿐인가. 상경하던 농민들의 트랙터가 경찰차에 막히자 길을 뚫은 것 또한 이들이었다. 누가 나오라고 지시하지도 않았다. 옳은 일이라면 현장으로 모였다.
언제부턴가 가슴속을 답답하게 짓누르던 뭔가가 쑥 하고 뚫리는 기분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손가락질받던 이들도 손자뻘 되는 젊은이들이 잘못된 권력에 저항하고 새로운 미래를 찾겠다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봤을 것이다. 이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생각도 한층 젊어졌을 것이다.
단언컨대 어떠한 권력도, 어떠한 무기도 젊은이들의 용기와 발랄함을 막지 못한다. 막을 수 있는 길은 진정한 소통이다. 시민이 주인이 되는 공생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화해와 통합을 말할 일도 아니다. 우선 고통을 일으키는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의 가슴에 담긴 상처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줄일 수 있다.
이것이 겨울 들판에 피어난 '금잔옥대'처럼 거리에 나선 젊은이들에 대한 예의다. <송창우 제주와미래연구원 상임이사·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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