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숨] 문 뒤의 손님

[영화觀/ 숨] 문 뒤의 손님
  • 입력 : 2025. 03.24(월) 03: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영화 '숨'의 한 장면.

[한라일보] 죽음의 문턱에 닿았던 적이 있다. 몇 해 전에 갑작스레 몸이 무척 아팠고 급기야는 중환자실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예상했다 한들 다른 도리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중환자실은 시계도 없고 창문도 없는 곳, 시간의 흐름도 계절의 공기도 느낄 수 없는 곳이었다. 병상에 홀로 누운 채 까무룩 잠들었다 깨면 늘 울음 소리나 비명 소리가 들리곤 했다. 아마 내가 잠시 잠든 사이에도 그 소리들은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겨우 고개만 돌려 바라본 옆 병상의 누군가는 각기 다른 이유로 바뀌어 있었다. 병세가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향한 이도 있었고 악화되어 영안실로 떠난 이도 있었다. 일정한 조도의 형광등 아래에서 그 공간을 수시로 넘나드는 죽음의 방문을 멍하니 지켜보며 생각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생생한 죽음보다는 멀어진 삶이었다. 자유롭게 살아 움직이던 순간들의 기억이, 이 공간 밖에서 지금의 나의 삶을 응원할 이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자주 떠올랐다. 삶의 바로 옆에 죽음이 있다고 느껴본 적은 드물었는데 그 시간 동안 나는 죽음의 바로 옆에 삶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어쩌면 삶과 죽음은 이음동의어가 아닐까.



윤재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숨]은 죽음을 둘러싼 직업을 가진 이들인 유재철 장례지도사와 김새별 유품정리사 그리고 죽음이라는 시기에 가까워진 노년의 넝마꾼 문인산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당사자이듯 죽음에도 마찬가지, 삶의 시간들을 피할 수 없듯 죽음의 순간 또한 마찬가지다. 타인의 죽음을 돌보는 일은 직업으로 가진 두 사람 유재철 장례지도사와 김새별 유품정리사는 망자의 몸에 새겨진 흔적과 망자의 공간에 남겨진 흔적들을 더듬고 다듬는 이들이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죽음은 낯선 순간이 아닌 일상의 연속에 가깝다. 낯 모르는 타인이지만 정성스러운 손길로 죽음 뒤의 삶을 찬찬히 쓰다듬는 장면들에서는 경건함이 느껴진다. 죽음을 매만지는 두 직업인들의 손을 바라보던 [숨]의 카메라가 이동해 멈춰서는 곳은 파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 문인산 씨의 손이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대도시 속에서 부유하지 않은 노인의 삶이 녹록할 리 없다. 많은 이들이 저속노화를 트렌드로 받아 들이지만 늙고 낡는 것은 결국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단계이다. 문인산 노인은 새것으로서의 수명을 다한 파지들을 주워 팔아 스스로를 먹이고 살리는 이다. 그의 손은 정직하게 생을 이어가는 수단이다. 선명한 삶의 주름이 새겨진 두 손으로 파지를 줍고 밥을 짓는다. [숨]은 세 사람의 손이 삶과 죽음을 대하는 순간들을 서두르지 않고 따라간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모두에게 각기 다를 것이다. 이제껏 누적한 내 삶의 귀한 것들이 일순간 사라지는 것이 무서울 수도 있을 것이고 내가 사랑했던 살아 있는 이들과의 교류가 끊어지는 것이 슬퍼서 일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사후의 삶을 상상할 수가 없는 공포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어떤 석학이나 종교인도 감히 개별적인 죽음에 대해 명징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죽음은 결국 내 삶을 찾아오는 단 한 명의 마지막 손님일 것이고 그 손님을 맞는 이 또한 오로지 나일 수 밖에 없어서다. 내일을 준비하고 노후를 대비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 결국에는 어떤 길을 택하든 마지막 지점에는 생을 떠날 지점에 닿는다.



[숨]은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단지 계획에만 있지 않음을 이야기 한다. 수많은 연습이 삶의 고비들을 수월하게 넘게 돕기도 하지만 결국 그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연습 끝의 실행을 만든다는 것, 죽음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란 무엇일까. 두려움을 피하지 않는 마음을 준비하는 일이야 말로 죽음을 대비하는 선행 학습이 아닐까. 언젠가 죽음은 다시 나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준비가 되었냐고 문 밖에서 정중하게 물을 수도 있겠다. 그때 그 시간이 찾아 왔을 때, 죽음에게 문을 연 나의 삶이 부산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몸 가짐도 내 생활의 구석들도 나의 죽음에게 자연스레 소개하고 싶다. 이 삶을 이렇게 내 방식대로 가꿔왔다고, 내 소중한 삶과 내가 여기까지 함께 왔다고 나와 같은 얼굴을 한 죽음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미 그도 다 아는 것들이겠지만 짐짓 모른 척 대견해 하는 미소를 보여주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그렇게 생생한 삶의 빛으로 죽음의 낯을 물들이고 싶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652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