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섬 제주의 가치, 지하수](4)용천수가 사라진다

[화산섬 제주의 가치, 지하수](4)용천수가 사라진다
제주도민의 생명의 원천 '용천수' 사라질 위기
  • 입력 : 2016. 02.29(월) 00:00
  • 고대로 기자 bigroa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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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말라버린 제주시 하귀리 해안 용천수강경민기자

물허벅 등 제주의 독특한 물 이용 문화 뿌리내리게 돼
용천수 중심으로 사람들 모여 '마을'이라는 집단 발전
1970년대 이후 상수도 보급으로 용천수 활용 사라져
제주지역 1023개소 중 흐르지 않는 곳 443개소 달해

제주도는 지질학적으로 현무암·조면암· 퇴적암류 등으로 이뤄져 있고 토양은 두께가 얇은 화산회토로 이뤄져 물 빠짐이 좋다.

연평균 2000㎜에 달하는 많은 비가 내리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연중 물이 흐르는 하천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주는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을 통해 지표면으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용천(spring)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척박한 화산토의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야만 했던 제주도민에게 용천수는 생명의 원천이자, 제주의 독특한 향토문화를 싹트게 한 모태가 되었다. 용천수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마을'이라는 집단으로 발전했고 용천수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물허벅', '물구덕', '물팡'과 같은 제주도만의 독특한 물 이용문화가 자연스럽게 뿌리내렸다.

또 용천수를 식수용, 목욕용, 세탁용 등과 같은 용도로 구분해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함과 동시에 지역 주민 모두가 물 지킴이 역할을 하도록 했다. 아울러 용천수는 만남의 장소로서 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의 장소로서도 한 몫을 했다.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고 있는 김녕리 청굴물 용천수

이른 아침마다 혹은 일터에서 돌아온 후 부녀자들은 물허벅으로 용천수를 길어다 물항을 가득 채워야 했고, 이런 까닭에 제주의 여인과 물허벅은 제주를 상징하는 생활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1970년대부터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차원의 수원개발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지하수 관정 개발사업이 연차적으로 진행되면서 '물허벅'으로 용천수를 길어다 이용하던 물이용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수도꼭지 시대'인 상수도 문화가 탄생했다.

이같은 중앙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의 수원개발 노력으로 1988년 상수도 보급률이 99.9%에 달했고 제주도민들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던 물에 대한 고통과 서러움에서 완전히 해방됐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물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지금 제주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해왔던 용천수에 대한 관심도가 점차 낮아지고 각종 개발사업에 의해 매립되거나 훼손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또 '물구덕'을 비롯한 '물허벅' 같은 옛 물이용 도구는 사진속이나 박물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제주민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활용가치를 상실한 한경면 금등리 해안 용천수

▷실태=제주도수자원본부가 지난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도내 용천수 실태를 조사한 결과 모두 1023개소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383개소는 양호했으나 멸실 등으로 용천수가 흐르지 않는 곳은 443개소에 달했다.

현재 용천수 관리는 행정시 읍·면·동이나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필요한 곳만을 대상으로 정비·관리하고 있으며 일부는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게 무분별하게 정비하거나 이용시설을 설치하는 곳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 한담리 해안에 있는 용천수는 복원을 하면서 주변에 사각형 형태의 시멘트 돌담을 쌓아 밀물 때 안으로 유입된 쓰레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해 해양쓰레기 수거장으로 전락했다.

제주시 한림읍 지역에는 90여개 용천수가 존재하고 있지만 대부분 용천수가 질산성 질소에 오염이 됐고 고갈되고 있다.

제주보건환경연구원이 최근 도내 용천수의 수질을 분석한 결과 한림읍 옹포천 유역 용천수의 질산성 질소는 식수 이용에 부적합한 9~12㎎/L로 나타났다. 주변 농경지에 뿌리고 있는 화학비료에서 질소 성분이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보전가치가 있는 용천수를 선정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적극적인 용천수 보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세대들은 물론 미래의 후손들에게 잘 보존된 용천수를 물려주는 일이야말로 현재를 살아가는 기성세대들이 해야 할 몫인 것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올해 12월말까지 추진하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관리계획 수립 용역을 통해 용천수의 효율적 활용방안을 마련하고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친환경적 이용시설 설치, 체계적 보전·관리 방안, 용천수 스토리텔링 활용방안 등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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