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우리가 가야하는 곳

[영화觀] 우리가 가야하는 곳
  • 입력 : 2023. 12.29(금)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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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

[한라일보] 우리는 살면서 타인을 사랑하거나 미워하고 이해하거나 오해한다. 타인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겹이고 그 겹을 실감하는 일은 나라는 실체를 체감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겹겹으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일은 어렵고 버겁고 복잡하다. 때로는 이 모든 부피의 중압감 때문에 그저 스스로를 홀로 두는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 숨고 피하고 외면한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을 홀로 산다는 것은. 수많은 미움과 오해들이 밀물처럼 닥칠 때 스스로의 퇴로를 확보하는 방법은 사랑과 이해의 경험들을 떠올려 그곳으로 향하는 것 뿐이다. 우리가 가야하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감싸 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평생 반복해도 아쉬움이 없을 삶의 연습일 것이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등을 통해 국내는 물론 전세계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은 서정적인 뉘앙스가 강했던 그의 전작들과는 다른 양감의 제목을 가지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천차만별일 제목이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사회로부터 소외된 삶의 면면들을 골몰하게 들여다 본 그의 너른 시선은 이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유지된다. ‘누가 괴물인가’라는 영화 포스터의 홍보 문구처럼 영화 [괴물]은 나를 둘러싼 타인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추적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괴물 찾기’의 추적극처럼 내내 숨가쁘게 달려가던 영화는 돌연 수많은 질문들을 관객들에게 남긴 채 걸음을 멈춘다. 걸어도 걸어도 끝내 닿을 수 없는 타인이라는 장소 앞에서.

초등학생인 아들 미나토와 함께 살고 있는 엄마 사오리는 아들의 행동에서 수차례 의문을 느낀다.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걱정스러운 아들의 흔적들이 감지되자 사오리는 결국 미나토의 학교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들 미나토가 호리 선생님의 학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시작되고 그것은 어느새 확신이 되어간다. 영화 [괴물]은 이렇게 시작한다. 엄마 사오리의 가슴 아픈 진실 찾기는 보는 내내 관객의 마음에 분노를 쌓는다. 나 또한 어린 학생을 핍박하고 학부모에게 투명하지 않은 학교라는 실체를 추적해 진실을 밝히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3장 구조로 이루어진 1장에 속할 뿐이다. 진실을 그 너머에 있다. 영화의 2장과 3장에 이르면 1장에서 관객이 느낀 모든 것은 속단이 된다.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한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은 정교하다. 관객을 속이려고 쓴 트릭이 아니라 우리가 섣불렀던 모든 순간들에 대한 일침에 가깝다.

영화 [괴물]은 누가 괴물인가를 밝혀 내고 싶은, 대상을 지목하고 싶고 비난하고 싶은 이들의 손가락의 끝을 스스로가 보게 만드는 영화다. 내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과 그에 담긴 적의의 끝이 과연 어디로 향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나 또한 평생 나에 대해 다 알 수가 없는데 타인이라면 어떨까. 그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일은 가능하기나 할까. 수도 없는 겹으로 둘러 쌓여진 누군가의 표피를 가만가만 풀어내는 일만 해도 엄청난 수고일 터인데 과연 그 속을 짐작할 수나 있을까. 우리는 종종 타인을 풀어내지 않고 뜯어내려 한다. 마음은 급하고 방법은 서툴러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내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해버린다. 그리고는 말한다. 사실을 밝혀내고 싶었다고. 누군가 ‘사실은 하나지만 진실은 여러 개’라는 말을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각각의 진실과 진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도 타인도 그렇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마침내 알게 되는 것, 알아야 할 것은 모두 명백하지 않은 무엇일 것이다. 내 속이 시원하게 타인에 대해 알아 버리는 것, 그것이 정말로 내가 원했던 것일까. 명백한 사실을 내 손에 쥐고 얻는 만족감이 내가 그토록 얻고 싶었던 타인의 조각일까.

너와 나는 가끔은 우리가 된다. 그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드는 데는 어떤 정보도 필요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미움과 오해가 잔해처럼 널려 있는 쓸쓸한 해변가를 걷다가도 사랑과 이해의 밀물로 밀려오는 파도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이란 바다를 항해하는 이유일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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