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소원을 말할 때

[영화觀] 소원을 말할 때
  • 입력 : 2025. 01.06(월) 01: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영화 '위시'.

[한라일보]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해의 여러가지 감정들을 기억 어딘가에 묻어둔 채로 새해의 소망을 비는 1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해를 넘기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넘어갈 수 없고 넘길 수 없어서다. 지난 해의 12월은 모두에게 여러모로 혹독했다. 살면서 겪어볼 일이 있을까 싶었던 계엄 사태가 불시에 벌어졌고 한 해의 마지막을 앞둔 시점에서는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했다. 믿기지 않는 참혹한 일들이 꼬리를 물었고 참담한 마음으로 얼룩진 우리는 차마 넘기지 못한 달력을 마음에 둔 채로 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시린 겨울의 광장에서, 도로에서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소원을 빈다. 손에 쥔 색색의 응원봉들이 어둔 밤 하늘을 비추며 물결로 흔들린다. 매년 새해가 되면 기도했던, 각자의 마음 속에 지닌 색색의 소망들 또한 지금은 함께의 염원에 더해져 그 빛을 선명히 발하는 중이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위시]는 지난 해 1월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1년이 지난 시점에 보게 되었다. 디즈니 특유의 섬세하고 화려한 색감과 뮤지컬 형식을 차용해 만들어진 신명나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최근의 시국과 맞물려 이상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마법의 왕국 로사스에 살고 있는 아샤는 이 왕국을 만든 매그니피코 왕의 견습생이 되려는 소녀다. 수많은 백성들이 바친 소원을 수집품처럼 소유하고 있는 매그니피코 왕은 아샤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고 아샤는 왕의 사유재산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소원을 되찾아 주기 위해 왕의 대립각에 서게 된다. 그리고 아샤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하늘의 별이 지상으로 내려와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 아샤를 돕게 된다.



[위시]는 누군가의 소원이 어떻게 빛을 발하고 빛이 바래는지에 대해 여러가지 질문을 남긴 영화였다. 누군가가 나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는가, 그런 절대적인 힘을 가진 이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최근 시국과 맞물려 해사한 화면과 대비되는 씁쓸함을 느끼게 했다. 영화 속 매그니피토 왕이 알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소원이 어떤 것인지, 그들이 왜 그런 소원을 품고 사는 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왕은 더 많은 양의 소원들을 갖고 있는 것이 자신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이다. 또한 언젠가 그 소원들 중 극소량을 자신의 마법을 통해 이루어 줄 수 있다는 것으로 통치의 기반을 마련하는 이이기도 하다. 그는 타인의 소원이 가진 간절함에, 지극함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사람인 동시에 자신의 믿고 있는 권력의 가치를 위협하는 작은 불빛에는 심하게 요동치는 이이기도 하다. [위시]의 사람들은 왕이 만든 견고한 벽을 깨트리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의 빛이 그런 사람들을 돕는다. 왕의 창고에서 어둡게 변색되어 가는 소원들이 그 빛을 받아 다시 영롱해질 때 사람들은 소원이 '바칠 수 있는'것이 아닌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품고 있는 희망의 표식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도 걸어둘 수 있다는 것을 이 힘든 시국에 열렬히 알아가고 있다. 포기의 마음으로 창을 닫을 때에 들려오는 단단하고 우렁찬 목소리에 다시 세상을 향해 얼굴을 내밀게 된다. 영원히 어두울 것만 같은 밤에도 눈이 시리게 밝게 빛나는 빛에 의지해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아닌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어쩌면 겨울은 생각보다 더 길 수도 있고 어둠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어두울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길고 밝은 행렬들을 우리는 분명히 보았다. 우리가 함께 소원을 말할 때 소원은 결코 바래지 않는다. 저 먼 하늘의 별들이 서로를 비추면서 더 오래 빛나듯 지상의 우리 또한 각자의 곁에서 서로를 빛나게 만들고 있으니 하늘도, 땅도 결코 오래 어두울 리 없다. 우리가 소원을 말할 때 만들어지는 화음이, 우리의 소원이 서로에게 가 닿는 감촉이 우리를 비춰주고, 데워주고 있다. 그렇게 멈추지 않는 빛을 따라서 새로운 세계의 길이 열리고 있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500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