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66] 3부 오름-(25) '갈세', '갈시'가 '가세', '가시'로 변화, 오름의 지형특성을 반영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66] 3부 오름-(25) '갈세', '갈시'가 '가세', '가시'로 변화, 오름의 지형특성을 반영
가세오름은 가위와 무관, 골짜기가 있는 오름
  • 입력 : 2024. 01.30(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가세오름은 세화1리와 토산1리 중간에 있다. 표고 200.5m, 자체높이 101m, 저경 771m, 둘레 2365m이다. 세화리 쪽에서 보면 사다리꼴, 토산리 쪽에서 보면 남북 두 봉우리가 솟아오른 모양이다. 토산1리 마을에서 바라볼 때 남북의 두 봉우리가 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분화구를 형성한다. 화구 내 중턱에는 골짜기를 이루어 계곡물이 흘러내린다.

가세오름의 이름은 10개, 지역 주민, 관공서, 고전기록 제각각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1리에서 바라본 가세오름.

오름의 이름이 흥미롭다. 산봉우리가 두 갈래로 갈라졌고, 그 모양이 가위의 제주어인 '가세'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거나, 갓을 닮았다고 해서 갓오름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한다고 토산1리 주민들은 믿는 것 같다. 또한, 풍수설 '가사장삼형'에서 유래해서 가사봉이라고 했던 것이 가세오름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 외에도 어머니의 가슴 모양이라고 하여 가슴오름 혹은 가세오름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문헌상으로는 17~18세기에 나온 '탐라도', '탐라순력도', '제주삼읍도총지도'에 상악(橡岳), 1709년 '탐라지도'에 가사악(加沙岳), '제주읍지'에 가시악(加時岳), 1899년 '제주군읍지'에 가시악(加時岳), 1910년 '조선지지'자료에 가사봉(袈裟峰), 지역에서는 가사악(可沙岳), 가사봉(加沙峰)으로도 쓴다. 현재 지도상 이름은 가세오름이다.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 서귀포시장 공동명의로 세워진 현지 안내 간판에는 가세봉으로도 표기했다. 지역주민들이 믿고 있는 이름, 고전에 기록한 표기, 관공서에서 쓰는 이름이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개인의 상상과 주관이 덧씌워져 혼란 가중


이 이름들을 열거하면 가사봉(加沙峰), 가사봉(袈裟峰), 가사악(加沙岳), 가사악(可沙岳), 가세봉, 가세오름, 가슴오름, 가시악(加時岳), 갓오름, 상악(橡岳) 등 10개에 달한다. 이렇게 다양해진 이유는 제주도 고대인들이 이 오름을 어떻게 불렀으며, 그 뜻이 무엇인지 오늘에 와선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쓰던 이름이 전승 과정에서 소리는 그대로이나 뜻은 망각해버렸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하여 개인의 상상과 주관이 덧씌워지면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가세오름 중턱의 골짜기.

이 현상은 지명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미흡한 탓이 첫 번째다. 또한, 비교적 사용빈도가 높고 언어사회가 광범하여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후부요소조차 제주 지명에서는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지난 회에서 다룬 바와 같이 거린사슴오름은 '거린사슴+오름'인가, '거린+사슴+오름'인가가 풀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구조냐에 따라 그 뜻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게 벌어진다.

가세오름도 마찬가지다. 이 이름은 '가세+오름'인가, '가+세+오름'인가. 지금까지 풀이한 모든 예는 '가세+오름'의 구조로 보았다. 이러니 이 오름의 뜻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즉 가사봉(加沙峰), 가사봉(袈裟峰), 가사악(加沙岳), 가사악(可沙岳)은 '가사'를 스님의 입는 옷이거나 머리에 쓰는 '갓'으로 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사봉(袈裟峰)은 훈독자가 되고, 나머지는 훈가자가 된다. 여기에 오름을 지시하는 '악'이나 '봉'을 붙인 것이다. 가세봉과 가세오름은 가위를 닮은 오름으로 본 것으로 차자가 아니다. 갓오름은 갓(冠)을 닮았다는 뜻이니 차자가 아니다. 가시악(加時岳)과 상악(橡岳)은 같은 뜻으로 쓴 것이라면, 가시악은 상수리나무의 훈가자, 상악은 훈독자를 차자한 것이다. 이건 이 이름을 표기하기 시작한 17세기이래 모두 진정한 뜻을 모르고 사용한 것이다. 그나마 가세오름 혹은 가시오름만이 진실에 가깝다.



표선면 가시리 지명은 이 오름 이름에서 기원


이 이름은 '가+세(시)+오름'의 구조다. 이는 다시 '가+세(시)'에 '오름'이 덧붙은 것이다. 그러니 원래 이름은 '가세'다. '가시'였을 수도 있다. 그럼 '가'는 무슨 뜻일까? 이것은 이 오름의 형태 특성을 나타낸 말이다. 즉 이 오름은 '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오름들과 구별된다. '골'이란 첫째 동(洞)의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1447년 펴낸 '용비어천가'에는 북천동(北泉洞)을 '뒷사심골'로, 사동(蛇洞)을 '바얌골'로 썼다. 둘째는 '고을'이다. 1447년 편찬한 석보상절에는 '가올히이나 나라히이나'라고 하여 고을을 '가올'의 형태로 표기하였다. 세 번째는 골짜기의 뜻이다. 석보상절 '묏 고래 수머 겨사'라는 구절에 '골에'를 '고래'라는 형태로 표기하였다. 이런 형태로 볼 때 가세오름은 골짜기가 있다는 뜻으로 처음엔 '갈세'였을 것이다. 골은 위에서처럼 '골' 혹은 '갈'로 표기한 사례가 있다. 여기서 'ㄹ'이 탈락하여 '가세'가 되었다. '갈시'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가시'의 형태가 된다. 국어에서 'ㄹ' 탈락 현상은 흔한 편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던 기록자들이 '오름'을 덧붙이거나 한자 표기 과정에서 '가세악' 혹은 '가시악'이 된 것이다. 결국, 이 오름의 고어형은 '갈세' 혹은 '갈시'이다. '세'와 '시'는 같은 말로 '삿' 혹은 '수리'의 뜻이니 이 말은 '갈+오름+오름'의 구조다.

지난 수백 년 동안 가세오름의 뜻을 모르고 그저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해 왔다. 최근 들어서는 '가위를 닮은 오름'이라고 설명하는 실정이다. 가위란 손잡이와 날이 중심점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형으로 엇갈려 전체적으로 X자형을 이룬다. 그러니 가위 모양이라고 하려면 네 가닥 형태여야 한다. 과연 가세오름을 보고 누가 가위 모양이라고 할 것인가. 그저 소리에 이끌린 풀이일 뿐이다. 표선면 가시리 지명은 이 오름의 이름에서 기원한다. 가세오름이란 '골(짜기)이 있는 오름'이란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7199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