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카타리나 블룸은 파티에서 만난 남자 괴텐에게 첫눈에 반하여, 자기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그 남자를 테러리스트, 은행강도 등의 혐의로 감시 중이던 서독 정보 경찰의 가택수색과 심문을 받는다. 아파트 입주민과 기자들이 그녀가 연행되는 것을 지켜본다. 경찰은 가정부 수입으로 어떻게 좋은 아파트를 가졌는지, 왜 비싼 보석을 가졌는지, 자동차의 운행 거리는 왜 높은지를 추궁하며, 괴텐과의 관계가 일회성 만남이 아닌 오래된 관계가 아닌지 추궁한다. 그들에겐 마르크스의 글귀가 적힌 메모도 의심스럽다.
카타리나는 가정부 일을 하는 변호사 부부의 친구인, 정·재계 거물 신문사 회장과 밀회 관계 중이지만, 그 사실을 드러내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의 집에는 성희롱성 전화와 협박성 메모와 우편물이 넘쳐난다. 퇴르게스 기자는 카타리나의 전남편, 중환자실에서 암 투병 중인 카타리나의 어머니를 몰래 취재하면서, 취재원의 말을 왜곡하여 기사를 써서 특종을 올린다. 퇴르게스는 경찰과 자신의 취재 중에 얻은 정보와 경찰이 심문 중에 얻는 정보를 교환한다. 수사행태와 언론에 정보가 새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과거 소련으로 간 아버지나 진보적 성향을 문제 삼아서 협박한다.
카타리나의 전화를 도청하던 경찰은 신문사 회장의 별장에 숨어 있던 괴텐을 체포한다. 모든 것이 언론에 중계되고 대서특필된다. 카타리나는 주변 사람들이 경찰 조사와 언론의 신상 털기에 시달리고, 어머니가 사망하고, 자신의 명예가 떨어졌으며, 언론이 살인자라는 생각에 퇴르게스와 사진기자를 총으로 죽인다.
기자의 장례식에서 언론의 자유를 역설하는 추도사가 흐르는 가운데, 자막은 이런 저널리즘의 행태에 대한 영화 속 묘사는 의도적이지도 우연한 것도 아니지만,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묘사였다고 한다. 인터넷 페이지 클릭 수가 곧 돈이 되는 언론환경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마녀사냥이 빈번한 현재 상황에서 큰 울림이 있는 영화이다. 197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인리히 뵐 소설을 영화화한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은 1962년 2월28일,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 라는 오버하우젠 선언에서 시작된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 감독이다.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의 소설로, 나치 시기에 스스로 성장을 거부하여, 나치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오스카라는 소년을 통해서 독일 역사를 다룬 '양철북' (1988),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을 영화화한 '시녀 이야기'(1990)가 유명하다. 출산을 국가가 통제한다는 설정의 SF 소설은 '핸드메이드 테일'(2017)이라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최근작으로는 히틀러의 파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거부한 독일 장군 콜티츠와 그를 설득한 스웨덴 영사 노르들링의 설득에 대한 '디플로머시'(2014)가 있다. <김정호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