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나의 내면으로부터 뿜어져나오려고 하는 것, 바로 그것을 실현하며 살고 싶었을 뿐이다.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이다.' 아마도 모두에게 평생의 숙원일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타인과의 세상 속에서 부대끼는 수많은 순간들마다 한없이 변형되는 나라는 비정형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으로도 불가능한 난제이고 나의 세상 밖에서 나의 세상 안을 들여다보는 열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수많은 산행의 경험을 가졌다 해도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집요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세상은 어떤 곳이고 그 세상은 어떤 경계선으로 인해 규정되어 있는가'.
극화된 수많은 이야기들은 성장 서사에 기반하기 마련이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서 인물이 변화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사건과 감정을 거쳐 한 인물이 다른 상태에 이르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들은 무수하며 그것은 보는 이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이야기는 그것을 보는 이와 상호 작용하며 또 다른 범주로 나아간다. 토머스 카일리 감독의 영화 [애니멀 킹덤]은 '미스터리 판타지'라는 장르의 외피를 두른 성장 영화다. 어느 날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간이 동물로 변하기 시작하고 세상에는 인간과 수인 그리고 동물들이 공존하게 된다. 주인공 에밀의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변화로 수인이 된 채 가족과 격리되고 시간이 흐른 뒤 에밀 또한 자신의 몸에서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애니멀 킹덤]은 이 변화의 풍경들을 예민하게 포착해 시각화한 영화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먼저 공포라는 감각과 맞닥뜨리게 한다. 명확한 이유 없이 진행되는 동물화의 과정은 예고도 순서도 없으니 누구라도 지금까지의 나와 다른 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변한 나를 둘러싼 세상은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 평범함과 정상성이라는 범주를 넘어서게 된다는 것이 왜 공포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왜 그 다름에 공포를 느끼고 그 공포는 어떤 이유로 혐오라는 감정과 만나게 될까.
[애니멀 킹덤]은 덜 인간적인 형태를 갖게 되는 이들의 변화를 통해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 에밀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통해 깊은 상처를 마음에 간직한 채 성장한다. 그를 살뜰하게 보살피는 아버지는 수인이 된 아내를 잊고 싶지도 잃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에밀은 다르다. 그는 전학 간 학교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에 '어머니는 죽었다'라고 거짓말을 한다. 세상이 동물로 변해가는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지 목격했기 때문이고 가장 가까운 관계였던 어머니가 그에게 의도치 않았지만 커다란 아픔과 슬픔을 남겼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일이 에밀에게도 찾아온다. 동물의 것이 분명한 것이 손톱 틈을 뚫고 나오고 등에는 털이 자라기 시작한다. 에밀은 이제 에밀이 아니게 된 것일까. 그 또한 그가 지운 어머니처럼 아버지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가둬지는 공포이 대상이 되는 것일까.
[애니멀 킹덤]은 외부로부터의 변화를 통해 내면을 세차게 뒤흔드는 소년의 성장통을 섬세하고 환상적인 화폭으로 옮겨낸다.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소설 [데미안]의 문구처럼 에밀은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려는 몸짓을 시작한다. 수인이 된 이들과 나누는 우정, 공포를 직면하려는 용기,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긍정이 그의 날개가 되고 그는 스스로가 갈 수 있는 데까지, 나의 변화가 가져다 준 나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규정된 경계선을 넘는다. 그가 수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동물의 형상으로 완전히 변할 지는 보는 이들은 확인할 수 없다. 영화는 공포와 혐오를 넘어 세계를 건너 스스로에게 가고자 하는 에밀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거둔다. 그렇게 내가 되고자 하는,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 길에서의 도약을 멈추지 않는 에밀의 뒷모습은 깊은 잔상을 남긴다. 그가 그를 향해 가는 모습에서 알을 깨고 날아 오르는 새의 날갯짓이 환영처럼 겹쳐 보였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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