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물컵을 뒤집어 놓고 빨대를 연결해 보는 아이. "물이 왜 안 나올까?"라는 질문이 입에서 툭 튀어나온다. 어른 눈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그 순간 아이는 세상을 탐험하는 작은 과학자가 된다. 만지고, 섞고, 눌러보며 스스로 원인을 찾고 결과를 예측한다. 그렇게 생긴 '궁금함'은 아이들 안에서 자연스럽게 사고와 배움으로 이어진다.
이 호기심을 어떻게 길러줄 수 있을까. 최근 유아교육계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 바로 'STEAM 교육'이다. 물론 새로운 말은 아니다.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을 융합해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교육 방식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이야기돼 왔다. 요즘 다시 이 개념이 강조되는 이유는, 정답보다 '생각을 확장하는 교육'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STEAM 교육은 다섯 가지 영역을 따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맥락 속에서 통합적으로 사고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역할놀이'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부서진 다리를 고치는 기술자'를 연기하며 문제 상황을 만들고, 친구들은 종이, 끈, 블록을 활용해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안에는 과학적 사고, 협업, 창의성, 공간 감각, 표현력까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한 E-STEAM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협업하는 경험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과 사고력이 향상됐다는 결과도 있다. 지식은 흘러가지만 경험은 남는다. STEAM은 바로 그런 경험을 쌓는 방식이다.
핀란드는 국가 차원에서 이 교육을 체계화했다. 정부, 대학, 기업이 함께 만든 'LUMA 센터'는 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과학과 기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탐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민간 기업까지 참여해 교육의 공공성과 전문성을 함께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STEAM 수업의 부담을 교사 한 명에게만 지우지 않고, 지역과 국가가 함께 떠안는 구조 속에서 아이들의 탐구 경험이 일상화되고 있다.
STEAM 교육이 일상이 되려면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교사 연수 과정 안에 융합 수업 설계 훈련이 포함돼야 하고, 놀이 중심의 교구와 수업 자료에 대한 지원도 따라줘야 한다. 지역마다 거점 센터를 만들어 교사들이 서로 협력하고 자원을 나눌 수 있게 한다면, 탐구와 창의성을 강조하는 교육도 훨씬 현실적인 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의 질문이 수업 속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것이다. 제도가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아이들의 일상은 질문으로 가득하다. "왜 하늘은 파랗지?", "이건 왜 둥글어?" 같은 궁금증에 함께 머물러주는 과정, 그 자체가 STEAM 교육의 출발점이다. 교사나 부모가 복잡한 지식을 알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의 질문 앞에 함께 서 있으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STEAM은 정답을 가르치기보다, 세상을 탐색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다. <김봉희 제주한라대학교 사회복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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