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희의 하루를 시작하며] 존엄의 다면적 의미

[권주희의 하루를 시작하며] 존엄의 다면적 의미
  • 입력 : 2024. 12.11(수) 02:3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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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삶을 제대로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충분했다는 확인과 인정을 내 삶의 주체로서 인식하는 행위다. 내가 어느 대상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는 후회와 미련이 없음에 가까울수록 그 관계가 충분했다고 인정하게 된다.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계엄령을 마주했다. 필자는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그 단어를 현실에서 체감하게 됐다. 처음에는 황당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웠으며, 며칠간 뉴스 보도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생소한 단어들을 어떻게 잘 알려줄 수 있을지 막막하기도 했고, 현재 더욱 복잡하게 얽혀지는 사태들은 때때로 시간을 늘어뜨리거나 멈추게 한다.

지난 11월, 필자가 운영하는 대안공간에서는 박정근 개인전 '바다, 애도'가 열렸다. 전시명과 동일한 '바다, 애도'라는 출품작은 2채널로 구성된 영상 작업이다. 4·3과 기후 위기를 '재난'이라는 주제로 관통하며 제주도와 대마도를 가로지른다.

제주에서 대마도를 잇는 해류는 4·3 당시, 시체가 떠내려간 자리이며 현재는 그 물길을 따라 제주에서 배출된 쓰레기가 표류한다. 무엇보다, 제주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 대마도까지 이어진 사실과 그곳의 사람들이 마주하고 실천한 행위를 통해 우리의 사유 방식과 행동을 돌아보게 한다.

현재에 나타나는 현상을 통해 과거를 실감할 수 있다는 깨달음도, 현장을 찾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상기하자는 주장도 국경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무색하게 한다. 막연하지만 우리는 무한히 서로 연결돼 있다는 믿음으로 어떤 죽음에도 누군가의 책임이 존재하며 누군가는 특정한 대상이라기보다 모두가 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겸허함을 느낀다. 박정근 작가는 인간의 자행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 비유한다.

인간의 무심한 행위는 때때로 누군가의 삶으로 흘러든다. 사소한 행위가 어딘가에 닿는 의미, 그리고 그것이 되돌아오는 결과에 대해 사유해 본다. 자신의 삶뿐만이 아니라 내 삶이 누군가에게 가닿을 때, 최소한의 후회만을 남길 수 있는 상태, 존재를 위한 존엄의 사유는 자신과 타자,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최선의 삶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길이 남을 현재의 재난 사태에도 제주 시민을 포함한 국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행동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믿음으로 각자가 제 역할을 하는 것,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다각적으로 사유하며 실천하는 것은 좀 더 나은 시대를 조형할 수 있는 원료가 된다.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은 '만프레드(Manfred)'(1817)에서 인간의 삶이 시대에 좌우되기도 하지만, 행동이 곧 시대가 된다고 강조한다. <권주희 스튜디오126 대표·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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