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거리에서
옛 제자를 만난다.
내가 반가워서 그를 부르면
그는 주춤거리며 외면하고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른다.
옛날에 더러 소주도 마시고
무척 가깝게 지내며
밤 새워 통음하던 제자
취하면 심중을 털어놓고
통금 5분 전에 서서
개떡 같은 세상이라 욕하고
전봇대 밑에 함께 실례도 했던 사이
그런데 모처럼 만난 그가
왜 나를 보고 주춤거릴까
나쁜 짓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왜 나를 보고 안절부절 못 할까?
나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
나는 웃으려던 입을 다물고
그는 이미 나와는 다른 세상,
옛날의 그가 아님을 알았다. (…… ).
-문병란의 '옛 제자' 부분
예로부터 오죽했으면 '세파(世波)'라는 말이 생겨났으랴! 세파를 잘 타야 출세한다고들 한다. 파도타기만 해도 해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터이다. 처음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잘못하다 바닷물이나 퍼먹고 초죽음이 되기도 한다. 빗대어 말 하고 있지만 세파타기에서도 세파를 잘못 타다 죽는 사람을 더러 봤다.
요즘은 스승이 세파 타는 제자에게 사람대접조차 못 받는 일이 생겨나기도 한다. '밤 새워 통음하던 제자/통금 5분 전에 서서/개떡 같은 세상이라 욕하고/전봇대 밑에 함께 실례도 했던 사이'였던 옛 제자가 모른 척하는 것이다. '그는 이미 나와는 다른 세상,/옛날의 그가 아님을 알았다'고 시의 화자는 통탄한다. 민주항쟁의 투사이기도 한 시인 문병란에겐 시대를 잘못 살려고 한 스승도 용서가 안 된다. 과연 우리 시대에 있기는 있는 것일까? 참된 스승이, 참된 제자가? 스승 되기도, 제자 되기도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일까? < 문충성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