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만나는 詩]
  • 입력 : 2010. 06.05(토)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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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遺書와 같은

그러한 詩를 쓰고 싶다.



유서처럼

떨리는 가슴으로

짧고

꼭 한 편밖에 없는 시를.



핏줄을 헐고

온몸으로 쓰다가

그대로 숨을 거두어 버린다 해도.



이승 살아 온

가장 절실한 목소리이면서

먼 훗날까지

풍화하지 않을



그러한 詩를

꼭 한 편만 쓰고 싶다.

- 양중해의 '쓰고 싶은 詩' 전문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시를 쓰면서도 시인은 명시 한 편 쓰기를 꿈꾼다. 어떤 이는 이 명시를 쓰고, 어떤 이는 이 명시를 쓰지 못 한다. 이 세상엔 진짜보다 가짜가 많다고들 한다. 그런데 과연 어느 것이 가짜인가? 진짜를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다. 이 가려내는 일을 하는 이가 가짜일 때도 있다. 더구나 끼리끼리 패거리지어 노는 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명시?

시인이 명시 쓰기를 꿈꾼다면, 독자는 명시 읽기를 꿈꾼다. 우리 시대 많은 시인들이 많은 시들을 쓰고 있다. 그 중에 명시는 아니어도 읽을 만한 시들은 얼마나 될까? 이마가 싸늘해온다. 시인 양중해는 '쓰고 싶은 詩'에서 '이승 살아 온/가장 절실한 목소리이면서/먼 훗날까지/풍화하지 않을//그러한 詩를/꼭 한 편만 쓰고 싶다.'고 처절하게 노래한다. <문충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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