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돌뱅이 차림을 하고 꼭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저기만큼 걸어가고 있어,
어릴 적 東뫼로 산소 가던 일, 할아버지
상여 뒤를 따라가던 일들을 거푸 생각하며
낯이 붉어 재개재개 따라 언덕 마루
까지 와 보면 거기 고운 자줏빛으로
텅 비어 있는…… 텅 비어 있는……
2
처음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 푸른 하늘은
그 님의 맑으신
말씀입니다
(중략)
나 죽으면 아무데도 안가겠어요
억울한 누님의 설운 이웃의
숨결 어리어 떠도는 공중의
나도 자줏빛 한 덩이
말씀이 되어
그때처럼 멀 멀
밀리겠어요
- 이제하의 '노을' 부분
'노을'은 처참하게 아름답다. 어느 계절이거나, 어떤 장소거나, 나이도 접고, 시공을 초월해서 만나는 '노을'.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가장 깨끗한 자줏빛 말씀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이 시의 화자는 놀랍게 장돌뱅이 차림을 하고 저기만큼 걸어가는 꼭 아버지 같은 노을을 만나고 있다.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상여 뒤를 따라가던 일들을 거푸 생각하며 '거기 고운 자줏빛으로 텅 비어 있는…… 텅 비어 있는' 하늘. 처음 있었던 말씀인 하늘을 만나고 있다. 마침내 '나도 자줏빛 한 덩이/말씀이 되어/그때처럼 멀 멀/밀리겠어요' 하고, 지는 노을을 동적으로 깊숙이 노래한다. '소멸'을. <문충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