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만나는 詩]
  • 입력 : 2010. 07.24(토)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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튿어진 단추를 달기 위해

고희를 넘긴 아내가

바늘귀에 실을 꿰어달라고 한다

예닐곱 살 때 어머니의 바늘귀에

직방으로 꿰었던 그 실이

오늘 내 손끝을 달군다

어머니의 푸른 하늘을 꿰차서 날던

그 방패연과 실꾸리

아내가 내민 바늘귀에 실을 꿴다

돋보기를 쓰고도 바늘구멍을 찾지 못해

나는 허둥댄다

갈 길을 찾지 못해

바늘귀 바깥에서 헛짚는 시간

바늘귀 하나 꿰지 못하는 나는

무엇을 잃고 여기까지 온 것일까

바늘귀가 내 앞에 절벽처럼 서 있다

-김종해의 '바늘귀' 전문



우리의 유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얼어드는 손바닥에 호호 입김을 불어넣으며 연 날리던 유년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없다. 아니다. 우리의 혼속에 남아 있다. 어머니가 쓰시던 실패에서 실을 감아 내거나 아예 통째로 연에 묶어 연줄로 쓰곤 했다. 방패연은 호사스럽다. 나는 고작 개구리 연이나 날렸다. 그렇다. 어머니의 실꾸리의 연줄은 '어머니의 푸른 하늘을 꿰차서' 날아간다. 고희를 넘긴 아내가 단추를 달겠다고 내미는 바늘에 실을 꿰는 시의 화자. '예닐곱 살 때 어머니의 바늘귀에/직방으로 꿰었던 그 실이/오늘 내 손끝을 달군다'지만 마침내 '돋보기를 쓰고도 바늘구멍을 찾지 못해/나는 허둥댄다'고 삶의 캄캄함을 토로한다.

그래, 뒤돌아보면 우리의 삶도 '바늘귀 밖에서 헛짚은 시간'을 살아온 바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고희(古稀)를 넘긴 이들이여!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바늘귀 하나 꿰지 못하는 나'라면, '무엇을 잃고 여기까지 온 것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과연 '바늘귀가 내 앞에 절벽처럼 서 있다'는 생각에 생각이 미치면 새로운 삶의 길을 여는데 힘 쓸 일이다. 산수(傘壽)까지, 망백(望百)까지 더 나아가 백수(白壽)까지라도 건강하게 살아나갈 꿈을 꿈꿀 일이다. 내일은 전혀 오늘 같지 않게! 찬찬히 바라다보면 아직도 우리의 혼속엔 어린 날 설한풍에 연줄이 끊어진 연들이 날아가고 있지 않은가! -<문충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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