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와서
넓은 집에
혼자 살아온 것도 칠 팔년
늘
참말 같지가 않았다
방문 열면 마루방
덧신 발에 걸면서 한숨 쉬고
댕그마니 매달린 전등불
믿기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걸까
정수리 자르며
지나가는 시간
저승길
헤매고 있는거나 아닐까
글을 쓸 때는 살아 있다
바느질할 때 살아 있다
풀을 뽑고 씨앗 뿌릴 때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서쪽에서
빛살이 들어오는 주방
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
나는 내가 죽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
- 박경리의 '꿈' 전문
작가의 삶과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작가 박경리는 대하소설『토지』 4부에서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 세계대전, 남경대학살까지 등장인물들이 처참한 역사를 사는 이야기를『월간경향』지에 연재할 때였다. 그는 '작가생활 30여년에 처음으로 연재 중단의 고배를 마셨다'고 시집『못 떠나는 배』(1988, 지식산업사)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꿈'은 이 시집에 게재되고 있다. 원주에서 칠 팔 년 혼자 살며 창작생활에서 겪는 절대고독과의 싸움이 오롯이 나타나 있다. '글을 쓸 때, 바느질할 때, 풀을 뽑고 씨앗을 뿌릴 때' 시적 화자로 드러나는 그는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죽어 있는 것을 깨닫는 것은 '서쪽에서/빛살이 들어오는 주방/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 이다. 만난 적도 없지만 검은 테 안경을 쓴 생전의 모습이 문득 어른거릴 때가 있다. 적막강산. 꿈? <문충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