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83)애월읍 상귀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83)애월읍 상귀리
항파두리의 역사와 불가분의 유서 깊은 마을
  • 입력 : 2025. 02.28(금) 03:0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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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탐라국에서 원나라 탐라총관부 지배 99년에 이르는 시기에 귀일현의 중심 지역이었던 마을답게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왜구들과 같은 해적의 침입으로부터 최소 병력으로 방어가 가능한 지리적 강점이 있었기에 생활 터전으로 인구밀도가 높았을 것이다. 동쪽에 고성천과 서쪽에 소왕천이 성의 해자(垓字) 기능을 담당해주기 때문에 정주 공간은 유사시에 요새가 될 수 있었을 터이다.

그러한 전략적 강점을 명확하게 파악한 자들이 삼별초다. 항몽유적지 정도로 생각하는 항파두리는 김통정이 이끄는 삼별초만 부각되어 있는 느낌이 있지만 1273년 상황에서 외성인 토성의 총길이 6km, 토성 안쪽 800m에 달하는 성을 구축하는 과정을 유추하면 당시 이 지역 상귀리 조상들이 보유하고 있던 경제력과 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삼별초가 축성을 위하여 강제력으로 동원할 수 있는 토착민의 숫자 못지않은 번창하였던 경제력에 더욱 관심이 가는 이유는 입도하여 비빌 언덕으로 가장 적합한 곳이 이 지역이었음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현재도 항파두리의 80%가 상귀리 지경이고 보면 여몽 연합군에 의하여 삼별초가 섬멸되었을 당시에 이 지역 백성들이 입은 피해는 불 보듯 뻔했을 것이다. 마을 자체가 사라져 버렸으리라. 그 뒤에 1600년경, 소앵동에 강씨들에 의하여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1608년 상귀와 하귀로 분리되었다. 1884년 상귀리에서 고성리가 나눠졌다. 4·3 당시 소개령으로 두 번째 큰 피해를 봤었고 바닷가 마을로 내려갔다 와서 재건하였다.

솟아나는 샘물 자원 또한 사연을 품은 양질의 식수로 평가받고 있다. 장수물, 구시물, 옹성물, 거제비물, 종냉이물 등으로 대표되는 역사성 있는 샘물들이 조상 대대로 삶을 영위하는 생명수가 되어줬다. 특히 하천을 동반하고 있는 소왕물 동산 아래 마른 적이 없다는 샘물은 암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전형적인 제주 산물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의 하천은 대부분 건천이지만 사시사철 항시 물이 흐르는 소왕천은 지질학적 연구가 필요할 정도로 귀중한 상귀리의 자산이다.

현재의 모습은 애조로 개통으로 마을 활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접근성의 확대는 마을 발전의 중요한 촉매제가 된다. 농촌마을이지만 젊은 층들이 많이 이사해 와서 새로운 형태의 미래지향적 동질성과 일체감 형성을 위하여 노력하는 중이라고 한다. 역동적인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역량 강화교육에 참여하여 성과를 인정받고 있기에 더욱 심기일전하여 웃드르마을여행프로그램에 선정돼 실질적 프로그램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 실질적이고 알토란 같은 콘텐츠들이다. 마을 내 폐도를 활용 가로레포츠 공원 조성,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하여 문화여가 공간으로 활용, 잊혀진 옛길 마을 여행으로 스토리텔링 자원화 등 참으로 의욕적인 활로 찾기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외형적 변화와 비전도 내면적으로 '정'을 테마로 한 공동체 유대감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주민 서로의 협력 모델을 창출하고자 배려의 문화를 확산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 활동과 인프라 구축이 중장기적 과제라는 사실.

홍문철 이장에게 상귀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단호하게 "항파두리"라고 했다. 역사성에 방점을 찍어 발전 방향을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뿌리를 중요시하지 않고서는 마을공동체의 일체감과 공동체 의식 발현은 요원하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방문객 숙소들의 이름이 정겹다. 토토하우스, 파크빌리지, 그린지캠핑장, 애월햇살, 소낭집 등. 체험프로그램들 또한 준비되어 신청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파트빌리지-악기연습 섹소폰체험. 그린지 관광농원-분재와 텃밭농사체험. 돌담문화학교-돌담쌓기, 돌화분만들기, 몽돌그림그리기, 해설이 있는 돌담길 걷기. 토토아트리에의 요리체험 등.

대중성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들이 상귀리의 가치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첨병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를 시도하는 농촌가옥
<연필소묘 79cm×35cm>


마을 곳곳을 누비며 상귀리를 집약적으로 보여줄 풍경을 찾다가 만난 어떤 가옥. 오후의 눈 부신 햇살을 받고 뚜렷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낡아 보이지 않으나 집주인의 취향을 가미하기 위하여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중. 내부 인테리어를 집중적으로 하기 위한 공사이기에 지붕과 벽담은 그대로다. 엄밀하게 집의 근본적인 틀은 초가집을 원형으로 한다. 거기에 새마을운동 시절에 지붕개량으로 슬레이트를 덮고 살다가 조금씩 창호며 보일러 시설까지 시대에 맞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저 집은 길게는 두 세대 정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애정을 가지고 그리게 된 것이다. 채색을 빼고 오롯이 명암법에 의하여 광선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그리면서 발견하게 된 제주농촌 가옥이 추구하였던 놀라운 지혜가 있다면 집 안으로 태양광선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노력이다. 수리 공사 때문에 중심 부위가 뚫려 있어서 파악이 가능한 광선의 흐름에 주목하였다. 처마의 길이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금방 식별이 가능하다. 초가의 서까래가 얼마나 벽 밖으로 뻗는 것이 적합한가 하는 것은 풍토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초가집 시절부터 내려온 경험적 결과다. 태풍으로부터 지붕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뻗음이자 집 안으로 채광을 유도하는 저 공간 경계의 전통을 그리고자 하였다. 너무도 상징적이다. 상귀리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모토로 마을만들기 사업에 열정을 쏟는 모습 자체가 어떤 리모델링으로 보이기에. 지금 상귀리는 미래로 업그레이드 중.



내꾸래기폭포와 황다리궤
<수채화 79㎝×35㎝>


상귀리 마을의 역사를 가장 분명하고 온전하게 파악 할 수 있는 근거를 그렸다. 건천이라고 할 수 있는 냇가에 결코 마르지 않고 한겨울에도 물소리를 내며 가는 줄기로 흘러내리는 내꾸래기폭포. 고전적 분위기로 역사성을 살리기 위하여 동양화 붓으로 그에 상응하는 필법을 동원하였다. 저 물줄기의 근원은 놀랍게도 위에 있는 구시물이라고 하는 샘물이다. 아무리 수량이 풍부한 샘물이라 하더라도 그 먼 거리를 중간에 유실되지 않고 흐를 수 있다는 것인가? 역으로 생각하면 그 정도 긴 샘물이 생명력을 유지하며 흐른다는 의미다. 천 년 전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사람이 모여 살기에 너무도 풍부한 양질의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지질학적 연구가 이 신비한 물의 흐름과 관련하여 절실하게 필요하다. 용암에 의하여 생성된 암반지대가 어떤 방식으로 물을 이동시키는 파이프가 되는 것인지 보여주는 지적만족도 최강의 자원이다. 바로 옆에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신성하게 모셔온 황다리궤는 전통신앙의 차원에서 그렸음은 물론이거니와 저 폭로 아래 항시 고여 있는 맑은 물로 몸을 씻고 치성을 드리던 마음을 함께 그렸다. 10m 정도의 암반절벽이 폭포의 경사에서 뻗어 나와 이뤄지고 있느니 참으로 정교한 물과 돌이 만나 이룩한 자연예술품이다. 놀라운 비경이요 소박한 신앙의 대상이 상귀리에 숨어서 아주 조용하게 정성을 드리고 있다.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걱정과 함께 분명한 것은 마을의 가장 중요한 정신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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