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는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석탄 사용의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석탄 소비량이 증가하는 현실을 직시했다. '제본스의 역설(Jevons Paradox)'은 기술 혁신으로 자원의 사용 효율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총사용량이 증가하는 모순적인 현상을 의미하며, 이는 자원의 효율적 사용이 오히려 소비 증가 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개념이다.
제본스의 역설은 제주도의 환경·에너지 정책이 직면한 딜레마를 진단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주도는 '2035 탄소중립'을 목표로 에너지 대전환과 분산에너지특구 선정 노력 등 다양한 친환경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제본스의 역설 측면에서 본다면 이러한 정책이 에너지 소비 증가와 환경 부담을 초래할 가능성도 증대시킨다.
제주도는 전기차 보급률이 국내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하지만 전기차 충전 수요가 증가하면서 충전 분야 신기술이 도입돼도 제도적·경제적 측면에서 기존 화석연료 발전 의존도를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어나더라도 실질적으로 화석연료 발전소 가동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탄소 감축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제주도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생태 관광, 저탄소 여행 등을 장려하고 있다. 최근 여러 요인으로 조금 주춤하긴 하지만 '친환경 관광지'라는 이미지가 강화될수록 관광객은 지속해서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교통량 증가, 숙박·식음료 산업의 에너지 소비 확대, 폐기물 문제를 심화시켰다. 제주도의 환경 정책이 친환경 관광을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 관광객 증가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제본스의 역설이 작동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제주도가 이 역설적 상황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에너지 효율 향상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소비 감소를 목표로 한 정책이 필요하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더불어 대중교통 시스템을 강화함으로써 차량 이용 자체를 줄이는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 또한 관광객 수 증가가 아닌 관광의 질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관광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관광객 1인당 에너지·자원 소비를 줄이고, 환경 보호 기여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정책을 재편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이 실효성을 지니려면 도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혜택을 공유하는 모델의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 제주의 환경·에너지 정책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친환경 기술 도입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제본스의 역설이 반증하듯 효율 향상을 넘어선 전략과 시스템의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문만석 한국지역혁신연구원장·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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