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담은 저항의 상흔… 기억을 제안한 제주 작가

18년 담은 저항의 상흔… 기억을 제안한 제주 작가
고승욱 개인전 '어떤 이야기'
내달 9일까지 아트스페이스씨
동두천·4·3·몰래물·노근리 등
현대사 단면 퍼포먼스로 다뤄
"상처받은 이들에게 위로를"
  • 입력 : 2025. 03.30(일) 13:41  수정 : 2025. 03. 31(월) 15:13
  • 박소정기자 cosoro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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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제주시 이도1동 아트스페이스씨에서 고승욱 작가가 노근리 쌍굴의 총탄의 흔적을 프로타주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한라일보] 제주 출신 중견작가 고승욱(57)씨는 그간 '저항'의 이야기를 담고 '기억'을 제안했다. 미군 위안부들의 기억이 새겨진 경기 동두천의 상패동 공동묘지, 잊어서는 안될 아픈 역사인 제주 4·3과 잃어버린 마을 동광리, 개발로 터전을 옮겨야 했던 제주 몰래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한국전쟁 당시 비극의 역사인 충북 영동의 '노근리 사건'까지. 18년 넘게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며 위로와 치유를 전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동두천 상패동 공동묘지의 이름없는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돌초(돌 모양의 초)'로 불빛을 켰다. 제주 4·3 피해자 유족들이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더듬어 낸 기억에 더해 '미지의 초상'을 재현했다. 4·3으로 사라진 마을 동광리에서 마을 삼춘(제주에 웃어른을 부르는 말)들과 예술인들이 함께 농사를 짓으며 잠자고 있던 땅의 기억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4.3을 소재로 한 작품인 고승욱의 '백비'.

도로 확·포장 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왕벚나무를 살려내라는 제성마을 주민들의 외침 속에 담긴 개발이란 이름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몰래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퍼포먼스로 전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현장인 노근리 쌍굴다리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총탄 자국을 프로타주(물체 위에 종이를 덮은 뒤 문질러 만드는 작업)해 역사 흔적과 아픈 기억을 담아냈다.

제주시 이도1동 복합문화공간 아트스페이스·씨에서 열리고 있는 고승욱 작가의 개인전 '어떤 이야기'는 이러한 작가의 2007년부터 현재까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전시다. 지난 28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국가공동체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이들과 그 역사의 상흔을 이야기하며 상처받은 이들을 기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회화, 드로잉, 영상 등 20여점이 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동안 작업들의 배경이 되는 상황을 시와 에세이로도 정리했다. 작가의 작품은 회화, 드로잉, 사진, 영상, 시민 참여형 프로젝트 등 다양하다. 작가의 모든 작업이 퍼포먼스 기반에 두고 있어서다.

노근리 쌍굴의 총탄을 프로타주한 작품.

그는 199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활동하며 주로 실험적 퍼포먼스·전시기획을 통해 다양한 형식적 예술실험을 해왔고, 2012년 제주에 귀향 후에도 이를 기반으로 제주의 역사와 생활사를 다룬 창작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는 "작가는 역사의 상흔을 따스한 시선으로 혹은 날카로운 비판을 담아 때로는 특유의 익살을 섞어 치밀하게 압축해 녹여낸다"며 "이번 전시는 아픔의 궤적 속에서 기억하고 꿈틀대는 저항의 자취들이 상흔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공동체적 연대의 희망을 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시는 다음달 9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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