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그날 이후 누군가는 남은 전 생애로 그 바다를 견디고 있다
그것은 깊은 일
오늘의 마지막 커피를 마시는 밤
아무래도 이번 생은 무책임해야겠다
오래 방치해두다 어느 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떤 마음처럼
오래 끌려다니다 어느 날 더 이상 쓸모없어진 어떤 미움처럼
아무래도 이번 생은 나부터 죽고 봐야겠다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삶을 살아야겠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혼자 밥 먹는, 혼자 우는, 혼자 죽는
사람으로 살다가 죽어야겠다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침묵해서는 안 되는
그것은 깊은 일

삽화=배수연
오늘의 마지막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생각합니다. '그날'이 있었고, 그날 이후 누군가는 '전 생애로 그 바다를 견디고' 있는 어떤 일에 대해서. 그 일이 너무 깊고 캄캄해서 때론 '무책임해야겠다' 싶고, 때론 '나부터 죽고 봐야겠다' 싶은 마음이란 전혀 결함이 없는 동음이어입니다. '오래 방치해 두다'는 말이나 '오래 끌려다니다'는 말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기억력도 희미해지고, 지각도 없다시피 하고, 주제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판단도 전혀 없는 시간 속엔 이제 남은 시간이 없습니다. 이번 생에 망망한 바다는 하나밖에 없으면서 그것으로 전체입니다. 그만큼 헤아릴 수 없는 기호를 가진 슬픔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차라리 '그날'의 이름을 밝히지 마십시오. 언제고 그 이름을 밝히고 싶은 날이 오면 '찬성'이나 '반대'라는 오탈자 하나가 들어갈 순 있지만, 제주도의 다른 이름을 4·3이라 불러 주세요. 침묵은 안 됩니다. 과거가 앞에 오기도 하고 현재가 나중에 오기도 하는 현실이지만 푸른 태양이, 한 마리 새가, 어느 두발짐승이 그 '바다'에서 불쑥 솟아 나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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