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의 백록담] 훼손되지 말아야 하는 이름들

[진선희의 백록담] 훼손되지 말아야 하는 이름들
  • 입력 : 2025. 01.06(월) 04: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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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그것은 인간의 죽음이 아니다. 짐승도 그런 떼죽음은 없다."(현기영의 '쇠와 살' 중에서) 오래전 제주에서 "너무도 불가사의"한 대참사가 있었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과거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았다. 시와 소설, 때로는 희곡으로 붙들고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제주4·3 60주년이 되던 해인 2008년이었다. '4·3문학의 현장'이란 제목으로 현기영의 '순이 삼촌'에서 김석범의 '까마귀의 죽음'까지 재일 작가를 포함 24명이 쓴 작품의 배경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2007년 말부터 시작한 여정은 이듬해 10월에 끝이 났다. 변변찮은 기사였으나 작가별 한 편씩을 중심으로 30회 넘게 연재하는 동안 제주4·3을 작품으로 품었던 이들이 느꼈을 고통이 전해졌다. 어떤 작가들은 창작 과정을 들려주면서 목이 메거나 눈물을 보였다.

묵은해의 마지막 달에 일어난 일로 그 시기에 둘러봤던 해안가, 오름 등 제주 곳곳의 유적지들이 새삼 떠올랐다. 70여 년 전 제주 섬에 닥쳤던 계엄이란 용어가 다시 등장하면서다.

"제주4·3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계엄령은 주민 희생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전의 희생이 비교적 젊은 남자로 한정된 반면, 계엄령이 선포된 1948년 11월 중순경부터 벌어진 강경진압작전 때에는 서너살 난 어린이부터 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총살당했기 때문이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에서 2003년 펴낸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중 일부다. '계엄령 선포'(276~286쪽) 항목을 따로 둔 이 보고서는 "계엄령은 제주도민들에게 재판 절차도 없이 수많은 인명이 즉결처형된 근거로 인식돼 왔다"고 했다.

국가폭력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랐으나 1948년 제주에 이어 1980년 광주도 계엄의 비극을 겪었다. 한강의 장편 '소년이 온다'에는 소설 속 '나'가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저건 광주잖아"라고 말이다. 그리곤 이런 대목이 뒤따른다.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동안 직간접으로 체험한 역사는 우리에게 개개인의 생명과 인권이라는 가치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점을 일깨웠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제주시청 일대만이 아니라 서귀포 도심에서 시민들의 응원봉 불빛이 켜졌던 이유일 게다. 기억과 연대의 마음으로 거리의 어둠을 밝히는 빛들은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2025년의 첫 해가 떠오른 지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2024년 섣달이다. 심적으로도 그러지 않겠나. 한 해가 저물 무렵엔 여객기 사고로 막대한 인명 피해까지 발생하며 너나없이 크나큰 슬픔 속에 이 겨울을 나고 있다. 칼바람도 때가 되면 봄바람으로 바뀐다는 자연의 이치에 기대어 새해의 안녕을 기원해 본다. <진선희 제2사회부국장 겸 서귀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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