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주의 문화광장] 착각하는 눈이 미술을 이끈다

[김연주의 문화광장] 착각하는 눈이 미술을 이끈다
  • 입력 : 2025. 01.14(화) 01:3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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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의 그랑카페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열차의 도착'을 보기 위해서다. 아마 카페에 들어가 앉을 때까지도 자신들이 영화를 보다가 어떤 행동을 할지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자 스크린에서는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상영됐다. 영화가 얼마나 실감 나던지 철로가 아닌 카페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기차가 실제로 자신을 덮친다고 느꼈다.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고 말았다. 잘 알려진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인간의 눈은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불완전해서 강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시각을 기반으로 하는 미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눈의 불완전함에 기대어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눈은 평면에 그려진 그림을 3차원의 공간처럼 느끼거나, 얼룩을 특정한 형상처럼 여기거나, 서로 인접한 색을 하나로 합쳐 보는 등 다양한 오류를 범한다. 이러한 오류가 미술에서 다양한 기법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트롱프뢰유(Trompe-l'œil)는 프랑스어 뜻 그대로 눈을 속일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하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건물 천장에 하늘을 그려 지붕이 뚫린 듯 보이도록 그린 그림처럼 평면에 3차원의 공간과 사물을 실제 눈앞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발전했다. 옵아트는 눈의 착시를 극대화한 미술 사조이다. 옵아트 작품을 보면 평면이 분명한데 볼록 튀어나와 보이거나 쑥 들어가 보이고, 정지된 이미지인데 물결치듯 일렁이게 보인다.

오류에 쉽게 빠지는 눈은 작가만의 독창적인 표현도 가능하게 만든다. 신인상주의 화가 조르주 쇠라는 과학 원리를 연구해 점묘법을 발전시켰다. 화폭에 수많은 점을 찍어서 그림을 그리는 점묘법은 팔레트에서 물감을 섞어 색을 만드는 대신 눈에서 물감을 혼합해 색을 만드는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화면에 빨간색과 파란색 점을 나란히 찍으면 눈으로 볼 때는 빨강과 파랑이 구분되지 않고 보라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관찰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라도 대상을 볼 때 모든 부분을 빠짐없이 보거나 객관적 태도로 보기 어렵다. 지식, 생각, 감정 등이 대상을 볼 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작가마다 다른 독창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같은 사과를 보고 그려도 그림 속 사과는 작가마다 다르다.

눈은 지금도 그림을 볼 때 착시를 일으키고, 오류에 사로잡히며, 우리를 착각으로 몰고 간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들은 우리를 계속 가상의 세계로 이끄는 자들이다. 가상으로의 초대는 우리에게 현재 눈앞에 보이는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작품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믿지 말라는 경고이자, 겉으로 드러나는 세상 뒤로 감춰진 모습이 있다는 예언이다. 그래서인지 가짜 뉴스가 진짜로 둔갑하는 오늘날 작품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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