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01)백만 년이 넘도록 맺힌 이슬-최승호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01)백만 년이 넘도록 맺힌 이슬-최승호
  • 입력 : 2025. 01.21(화) 03: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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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년이 넘도록 맺힌 이슬-최승호




[한라일보] 이슬을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에

이슬이 걸리더라



이슬을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에

이슬이 걸리오



은하수를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에도 이슬이 걸립니까



이슬을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에 이슬이

걸리는군요



이슬을 건너가는

여치

뒷다리

삽화=배수연



무서운 시다. 아니, 시란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 이슬에 걸리는 여치란 바로 세상을 건너는 당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문득, 마주친다. 풀밭에 녹색 여치 한 마리. 눈이 휘둥그레지며 날아야 할지 뛰어야 할지 모르는 당신은 뒷다리를 이용해 뛸 수 있지만 날개가 퇴화해 날아갈 때 민첩할 수 없다. 당신의 방어 행동은 이슬을 지나가는 거지만 뒷다리가 이슬에 걸려 있다. 말의 저편으로 넘어가려는 생각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당신은 실은 투명한 이슬 한 방울에 갇혀 있는 게 아닙니까. 시치미를 뗄 수 없어 누군가 당신을 부추길 수 있지만 은하수는 멀고 당신의 몸부림은 보는 사람의 눈에는 그게 그저 고요하다. 이슬을 건너가는 중이니까. 아무것도 아니면서 이슬을 건너가는 당신의 뒷다리에 이슬이 걸리오. 그런 마음에 걸리는, 이슬을 묻히고 걸어가는 한 글자 같은 여치. 한 글자의 반 같은 작은 여치. 이슬은 백만 년이나 되었고 당신의 무거운 짐은 이슬을 건너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짧은 인생의 한 컷을 선사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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