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 한라봉의 경고: 옐로카드

[이나연의 문화광장] 한라봉의 경고: 옐로카드
  • 입력 : 2025. 02.25(화) 02:0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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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올해는 한라봉과 함께였다. 새해가 밝자마자 서귀포에서 숙식을 하며 한라봉을 따는 건 보람과 재미가 더해진 흥미로운 체험이었다. 친구의 한라봉 농장이라 이 어리바리한 생초보자가 귀한 만감류, 설대목용 특상품부터 따는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초보자의 눈에 농사는 단순히 자연과 대면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꽤 복잡한 구조와 어려움들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비닐하우스 안에 곱게 자란 한라봉이든, 노지에서 자란 열매이든, 비와 햇볕, 바람과 온도에 따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존해 낸 결과물이다. 그 과정은 어떤 이론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날씨와 기후는 당연히 중요하고, 그 변화가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에 미치는 영향도 컸다. 한라봉을 따는 날짜도 비나 눈, 온도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나도 하루는 약속한 날에 폭설이 내려 서귀포로 넘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특히나 섬인 제주의 기후는 변덕스럽기로 유명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뀌며, 그날의 기온과 습도는 한라봉의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기후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다. 한라봉 농사는 단순히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매일같이 변하는 날씨에 맞춰 나무를 돌봐야 하고, 그에 맞는 유통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기후 변화가 심화되면서, 날씨는 그 어느 때보다 예측할 수 없게 됐다. 한때 안정적이던 수확량이 줄어들고, 과일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렇게 어렵게 한라봉이 무르익어도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비가 지나가고, 바람이 불고, 갑작스러운 추위나 더위가 닥치면, 한라봉의 외형이나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환경에서 한라봉이 떨어지거나, 너무 익거나, 상해 버린다. 농부들은 그 모든 변화 속에서 최선을 다해 수확을 해내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수확량이 줄어들면 유통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제주에서 자란 농산물들은 다른 지역보다 가격이 높고, 유통물류비용 또한 높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예기치 않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수확량이 줄어들고 시장에 나가는 물량이 적어지면서 가격은 급등한다. 결국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한라봉의 가격은 원가와 유통 비용의 압박을 받으며, 농부들은 불확실한 시장 상황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 수확의 기쁨 뒤에는 변화무쌍한 자연과 싸워야 하는 노동의 무게가 있었다.

이건 이제 비단 농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단편적으로 마트에서 한라봉을 사기 위해 지불하는 가격은 단지 유통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기후 위기와 환경 변화의 결과물이다. 이제 기후 위기는 남극의 빙하가 녹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다가왔다. 이 불확실성 속에서, 한라봉은 경고용 옐로카드처럼 보인다. 아주 예쁜 경고장이지만, 그 함의를 간과할 수 없다. <이나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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