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모처럼 거실 창으로 아이 키만 한 햇볕이 들었다. 거실 창을 여니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시끄럽다. 무슨 놀이인지 "죽었네", "안 죽었네!" 말다툼이다. 저만치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꽃망울을 달고 저 홀로 외롭다.
지난 여름, 어머니는 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살아서 두 달을 못 넘긴다고 했다. 어머니는 일 년은 더 살 수 있을지 물었고 남겨진 시간을 차마 전하지 못하는 자식은 동백꽃 필 때까지만이라도 계시길 빌었다. 하지만 통증은 깊어졌고 혼절은 잦아졌다. 이미 구원(舊怨)으로 가득 찬 하늘에 자비 한 줄기 내려올 틈은 없었다.
가을의 반을 집어먹고서야 여름이 물러갔다. 어머니를 돌보다 울적한 마음에 병실을 나왔다. 화단을 경계로 병원 밖은 부산했다. 사람들은 재잘거렸고 멈춰 선 버스는 뱉어낸 만큼의 사람을 삼키고 떠났다. 선이었다. 오늘도 안녕한 그들과 아픈 사람들의 경계선. 자비와 은혜는 경계선 밖으로만 쏟아지고 있었다. 같은 하늘을 머리 위에 모시고 살면서 살고 죽음에는 무도한 차별을 두는지 원망스러웠다. 왜 우리에게만 견디지 못할 시련을 주는지에 분노했다. 원망과 분노는 슬픔 위에 타올라 가장 무거운 무게로 짓눌렀다. 이마에 칼 한 자루를 세웠더니 바람이 겨울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병세가 깊어져 옮겨온 병실에서는 장례식장이 바로 보였다. 며칠 간격으로 상주가 바뀌었고 검은 차림의 무리가 들어가고 나왔다. 어느 날 어둠이 밀려나던 시간, 구슬픈 소리에 창을 내다보니 운구차 주위로 상주들이 울고 있었다. "나 죽으면 너희들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셨을까. 눈을 뜬 어머니는 느리게 입을 열었고 더는 말을 잇지 못하셨다. 상주들이 우는데 어머니가 우셨고 나도 울었다. 어머니는 잠이 드셨고 나는 운구차가 떠난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다시 울었다. 경계선은 병원 구획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었다. 바라보기도 죄스러운 죽음, 그동안 외면하고 도피했던 그들의 슬픔에 하도 헛헛하여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 승강기에서 흐느끼는 젊은 여인을 보았다. 끝없이 돌고 돌 슬픔인가. 눈물이 차올라 천정만 바라보았다. 한 달이 더 지나 나도 승강기에서 울며 내려왔다. 발인 날 새벽, 운구차에 오르며 어머니가 계시던 병실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울지 않았는데 병실 창가에서 울고 있는 나를 보았다.
어머니가 떠나고 겨울 끝자락에 경계선 밖이었던 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모두 슬픈 사람들이다. 숨비소리 나던 너븐물과 주인 잃은 고무 옷, 돌밭에 거칠고 칼바람에 베인 어머니의 손등을 가슴에 박아놓고도 아프지 않은 척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해 질 무렵, 놀이터에서 죽었던 아이는 살아나 집으로 갔다. 곧 동백나무에도 물이 오르고 꽃망울이 열릴 터이다. 소중한 봄이다. 모르겠다. 붉은 꽃 찬란한 자리, 겨우 묻어놓은 슬픔이 문득 목울대를 타고 터져 나올지는. <신순배 수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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