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봄이다. 앙상했던 매화나무가 꽃을 피웠다. 왕벚나무에도 물이 오른다. 얼어붙었던 땅에서 새싹이 솟아나며, 그동안 쌓였던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하고 있다. 달력도 없을진대, 때가 되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경이롭다. 고요한 생체리듬에 맞춰 흐르는 시간. 지난해처럼, 아니 오랜 세월 해왔듯이, 꽃들은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고, 이파리는 햇빛을 품어 열매를 맺을 것이다.
조용하지만 자연스러운 생명의 순환이다. 그러나 이 순환 속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겨울을 살고 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은 피었으나 그림자가 없다. 눈부신 봄빛 속에서도 그림자가 없는 자들, 그들은 늠름하지도 않고, 민주주의자를 가장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우리 곁에 있다. 그들은 조용히 권력을 누리고 있다. 달러 가치가 오르면 기뻐하고, 시장의 혼란마저 자신들의 이익으로 삼는다. 여전히 찬란한 햇빛을 독차지한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소리 없이 웃고 있다.
반면, 그날 밤 마음을 졸이며 생중계를 지켜보았던 많은 이들은 여전히 겨울에 갇혀 있다. 얼어붙은 땅 위에 씨앗을 뿌려도, 햇빛은 그림자가 없는 자들의 것이기에, 싹이 트지 않는다.
자영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고, 일터를 잃은 사람들은 다시 거리를 헤매고 있다. 그들의 삶은 아직도 차갑고 어둡다. 매해 봄이 오건만, 봄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이 불공평한 겨울 역시 대물림될 위험이 있다. 마치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얼어 죽는 새싹처럼. 그러나 생명체 복제의 본질은 완전한 반복이 아니다. 생명은 변이를 통해 진화한다. 부정한 기억이 유전된다고 해도, 그대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힘은 함께 기억하고, 함께 말하고, 함께 바로잡는 것이다.
침묵을 거부하고, 진실을 외치는 목소리가 새로운 변이, 진화의 길이다. 고통의 유전자를 끊고, 자유의 유전자로 다시 쓰기 위한 진화이다.
항상성(恒常性), 본디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힘이 필요하다. 봄은 스스로를 치유하고, 다시 피어나기 위해 애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설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힘을 빼앗긴 사회는 아직도 몸살을 앓는다. 겨울을 끝내려면 그림자가 필요한 자들의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얼어붙은 땅에 봄을 다시 불러오는 길이다.
오늘도 지나면 과거다. 과거가 현재를 살릴 수 있도록 햇빛이 꽃을 비추고, 꽃의 그림자가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시인 김수영은 말한다.
"자유를 위해서는 먼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림자가 없는 자들에게 그림자를 되돌려주고, 햇빛을 모두에게 나눠줄 때, 비로소 참된 봄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림자가 진 자리마다 새싹이 돋고 꽃이 필 것이다.
봄은 이렇게 오는 것이다. <송창우 제주와미래연구원장·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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