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ChatGPT에 나오는 내용 말고 제주의 실정에 맞는 정책을 제안하면 좋겠어요. 연구원이시잖아요." 올해 수행하고 있는 제주 초고령사회 대응방안 마련 연구의 의견수렴 회의 중 참여자 한 분이 하신 말씀이다. 그간 제주의 고령사회 분야를 연구하며 필요하다고 판단해 고심하면서 설정한 정책 방향이었는데 참여자분의 이야기를 듣고 서운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과연 도민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 되고 체감할 수 있는 정책연구를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연구원이다. 연구원이라는 직업으로 일을 한 지 제주에서는 5년 차, 육지에서 다닌 연구기관 경력까지 합치면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전공 분야 공부를 조금 더 깊이 있게 하고 싶어서 육지로 대학원을 진학한 것이 이 직업으로 들어오게 된 첫발이었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자료를 읽고 분석하고 결과를 정리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박사과정까지 진학했고, 졸업 후 연구 업무를 계속하고 싶어서 육지 연구기관 몇 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5년 전 다시 제주로 내려와 지금은 제주도의 고령사회 관련 정책연구를 수행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연구하는 게 좋고 재미있어서 선택한 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제주의 고령사회 정책을 선도하고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는 위치에 와 있다. 내가 쓰는 연구보고서의 한 글자, 한 문장이 제주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데 활용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제는 개인적인 즐거움, 성취감, 만족감을 위해 연구하기보다 제주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제주 도정의 정책 발전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 됐다. 그래서일까? 한 해가 지날수록 부족함이 더 많이 느껴지고, 연구하는 것이 무서워지고, 연구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훨씬 무겁게 다가온다.
연구자가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연구자가 제시하는 결과는 우리 사회에 단기적 또는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연구자가 잘못된 정보를 보고서에 실으면 그것을 보는 도민들은 잘못된 지식을 알게 되므로 연구자는 책임감 있는 태도로 연구해야 한다. 그렇기에 매년 주어진 연구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임하고자 노력해 왔다. 하지만 그 결과들이 도민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대해서는 반성해 본다.
정책대안의 해답은 도민들의 삶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낱 부족한 연구원이기에 도민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연구자,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기 위해 고민하는 연구자, 사회적 책임을 잊지 않고 늘 최선을 다하는 연구자가 되고자 노력하겠다. 그리고 훗날 시간이 흘렀을 때 고령사회연구센터가 초고령사회에 제주 도민들의 삶에 체감할 수 있는 정책연구를 하는 기관으로 한층 성장해 있기를 희망한다. <김재희 제주연구원 고령사회연구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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