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常春) 가다-장철문
복사꽃밭에는
빗속에 꽃을 끄르는 복사나무가 있다
빗속에 꽃에 드나드는 호박벌이 있다
감나무에는
질긴 살갗을 찢고 나오는 잎사귀가 있다
빗속에 몸통을 밀고 나오는 날개가 있다
봄 산에는
가질 수 없는 연두가 있다
유채밭을 데리고
유채밭을 품은 둠벙을 데리고 날아오르는 능선이 있다
참꽃처럼 목이 젖은 멧비둘기가 있다
삽화=써머
창밖에서는 산과 바다에 비가 내린다. 봄은 봄이 으레 띠어야 할 밀리미터 단위의 미세한 색채들을 데리고 오고, 미처 입을 열기 전의 잎사귀들도 입부리를 빗물에 비비며 돋고 있다. 연한 유채색과 어울리게 비의 음계는 도에서 미를 넘기면 안 되도록 제한하고, 코끝이 시큰한 바닷바람도 잔잔하게 둔다. 그리고, 세상엔 잎보다 먼저 핀 참꽃이 아린 듯 허공의 적막을 받들고, 목이 젖은 멧비둘기가 어느 산머리에서 말을 잃고 서성일 수 있다. 그 속에서 인간의 추억은 무성영화처럼 마을을 돌고, 알 수 없는 비의가 가질 수 없는 연두처럼 빗속에 어룽진다. 시 속에서 형용사 '있다'는 갑작스레 확신이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나 되는 봄을 보고 있다. 시인의 꿈속에 상춘(常春)은 사뿐거린다. 한 오리 길을 타고 오는 갓난아기의 먼 울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 갈대 안에 봄바람 서걱이면 당신인가 싶어 나는 뒤돌아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