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사람은 태어나 죽기까지 돌봄(care)을 주고받는 상호 의존적 존재다. '돌봄 민주주의'의 저자 토론토(Joan Toronto)는 궁극적으로 누군가는 해야 하는 돌봄 부담이기에 돌봄의 과정을 평등하게 분담하는 '함께 돌봄(care with)'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특히 그녀는 인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돌봄 책임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편견과 무임승차를 해소하기 위해 '돌봄 민주화'가 지역별 실정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연말 계엄·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제주도는 '2024 제주사회 지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목할 점은 조사대상 도민 3000명 가운데 18%인 미취학(63.9%) 자녀와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44.3%)들은 부모 둘 중 한 명은 직장을 포기하고 가사와 양육을 맡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전히 제주사회의 열악한 아동 돌봄의 현실태를 보여주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건입동의 경우 한 해 출생아 수가 40명 정도에 그치면서 마을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2014년 700명에 육박했던 제주동초등학교 학생수도 현재 500명에 불과하다. 반면 건입동에는 공적 아동 돌봄 시설은 3개소 밖에 없다.
정원 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한 아동돌봄시설은 저학년 중심 10명 정도로 제한적 운영이 불가피하고, 초등돌봄교실은 저소득가정 중심으로 오후 1시부터 6시 30분까지만 운영한다. 저녁 급식을 제공하는 지역아동센터는 대기에 2년 이상 걸린다. 아동 돌봄 환경이 양호한 지역으로 맞벌이 부부들이 이탈하는 결정적 이유다.
지난해 건입동도시재생센터가 제주동초등학교 학부모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학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동 돌봄시설 공급 부족과 미스매치로 인한 돌봄 사각지대와 돌봄 공백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돌봄 시설 존재 여부나 운영 정보도 부족해 신청시기를 놓쳐 발만 동동거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에 2021년 건입동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면서 아동돌봄 부담을 가정으로만 돌리지 않고, 마을에서,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건입동 도시재생활성화계획에 돌봄센터 건립을 포함시켰다. 부지 마련 부터 공간 구성 등 공사 과정 전반에 주민 참여로 나타났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마을기업 건입동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이 제주도 1호 거점형 다함께돌봄센터 수탁기관으로 선정됐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마을 돌봄을 위해 공동체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에 대해 주민들 스스로 고민의 시간들이었다. 돌봄시설 하나 더 늘었다고, 마을 걱정거리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마을 곳곳이 아이들에게 안전한 놀이터가 되고, 마을 주민이 든든한 협력자, 후원자를 자임한다면 세대 간 소통 활성화는 물론 건입동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명범 행정학박사·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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