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간, 심장, 폐, 위장관, 피부 등의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들은 평생토록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세포들은 저절로 죽어 없어지지만 새로운 세포들로 교체되면서 일정하게 유지된다. 만일 조직의 일부가 갑자기 손실되면 신속하게 똑같은 세포들로 메꾸어진다. 이를 '조직재생(再生, regeneration)'이라고 한다.
피부의 때는 오래돼서 떨어져 나간 세포들로 피부 속 어딘가에 새로운 피부세포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씨앗세포(stem cell)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뼛속 조혈기관인 골수에 존재하면서 핏속에 떠다니는 각종 혈액 세포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조혈모세포도 대표적인 씨앗세포이다. 씨앗세포가 성숙한 세포로 변해가는 과정을 '분화(分化, differentiation)'라고 한다. 정상인에게서 관찰되는 모든 세포들은 씨앗세포가 세포의 수가 늘어나기 위한 세포분열과 분화를 거치면서 만들어 낸 성숙한 자손(progeny) 세포들이다. 완전히 성숙한 세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죽어 없어진다.
정상 조직에 숨어 있는 정상 씨앗세포가 어떤 원인에 의해 세포의 증식과 분화 같은 핵심기능들을 주관하는 다수의 전암유전자(proto-oncogene)들이나 암억제유전자/항암유전자(tumor suppressor gene/anti-oncogene)에 연속적으로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암 씨앗세포(cancer stem cell)'로 탈바꿈한다. 그 결과 암 씨앗세포는 분화 능력을 상실해서 미처 성숙하지 못한 형태에 머무르게 된 채 세포분열만 반복해서 그 수가 계속 증가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미경으로 암 조직을 관찰하면 정상 세포보다 크고, 세포의 가장자리가 불규칙하며, 세포핵과 그 속에 있는 핵소체들의 크기가 큰 미성숙 형태의 암세포들이 보인다. 그렇게 암 조직은 똑같은 형태의 암세포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암세포들은 하나의 암 씨앗세포로부터 만들어진 자손세포들이므로 유전자검사를 해보면 모두 똑같은 유전자 특징들을 갖고 있다. 흥미롭게도 똑같은 암 종류라고 해도 환자마다 암세포들의 분화 정도가 서로 같지 않다.
우리 눈에 보이는 암세포들은 암 씨앗세포의 자손세포들로 이들 중에는 암 씨앗세포가 숨어 있다. 정상 씨앗세포들은 급하게 재생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세포분열을 거의 하지 않고 겨울잠을 자듯이 숨도 쉬지 않고 가만히 있지만, 자손세포들은 세포대사와 세포분열을 활발하게 한다. 이러한 성질들은 암 씨앗세포와 암 자손세포들도 다르지 않다. 암 치료의 입장에서 보면 항암제와 방사선치료는 세포분열과 대사작용들이 활발한 암 자손세포들에게 매우 효과적이지만 암 씨앗세포에는 거의 작용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혈액암들과 생식샘암을 제외하고는 암을 초기에 발견해서 암 덩어리와 주변을 수술로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게 되면 남아 있는 암 씨앗세포가 재발의 원인이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암 씨앗세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또 다른 돌연변이를 계속 일으키므로 암은 재발을 거듭할수록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에 반응하지 않게 된다.
"암은 처음 치료가 암의 완치를 위한 마지막 기회이다(The first chance is the last chance for cure.)"라는 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한치화 제주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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