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문화로 거리를 바꾸자 - 이중섭·솔동산거리 진단과 전망] (9)거리의 풍경을 만드는 사람들

[사람과 문화로 거리를 바꾸자 - 이중섭·솔동산거리 진단과 전망] (9)거리의 풍경을 만드는 사람들
언덕배기 예술시장·쉰다리 무료 나눔 멈추지 않게 관심을
  • 입력 : 2024. 09.19(목) 01: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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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거리 야외 전시대 아래
토·일요일마다 아트 마켓 운영
서귀진지 알리려는 쉰다리모임
작가의 산책길·옛 서귀포극장
해설사·지역주민협의회 활동
시설만큼 중요한 사람 키워야




[한라일보] "무료로 문인화 체험을 할 수 있어요.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서귀포시 이중섭거리 옛 서귀포관광극장 앞 소품 가게 주인인 그는 주말 서귀포로 향한 관광객들에게 '작가의 산책길' 활성화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었다. 서귀포가 고향인 그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나섰다. 이전에도 그가 서귀포관광극장 벽면을 캔버스 삼아 서귀포시에서 이중섭 작품을 소재로 저녁마다 상영하는 미디어 파사드 관람을 권하는 장면을 봤다. 이중섭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기분 좋은 추억을 안고 가야 주변 상점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하는 그였다. 거리의 풍경은 절로 그려지는 게 아니라 그와 같은 이들의 숨은 노력이 하나둘씩 쌓인 결과가 아닐까.

차 없는 거리로 바뀐 구간에서 운영 중인 서귀포예술시장. 예전보다 규모는 줄었지만 제주에서 오래된 마켓으로 주말 이중섭거리의 또 다른 명소다.



▶자발적으로 첫걸음 뗀 거리의 또 다른 명소=지난 7일 이중섭거리 야외 전시대. 지붕을 씌운 전시대 아래 각종 수공예품 등이 펼쳐진 서귀포예술시장(서귀포 아트 마켓, SAM)이 섰다.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지역 사회와 소통하고 도내 작가의 역량을 발전시켜 지역 문화 생태계 조성에 이바지"하겠다는 취지로 2008년 시작됐다. 매주 토·일요일 예술시장이 운영되는데 그날은 언덕배기의 짧은 구간이 차 없는 거리로 바뀐다. 서귀포시와 협의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차량을 통제하고 있어서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아트 마켓"이라는 서귀포예술시장은 당초 비영리 단체 '서귀포예술벼룩시장'으로 등록했으나 2011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했다. 월 1회 토요일에 개최하던 예술시장이었는데 차츰 그 횟수가 늘었다. '이중섭거리에선 나도 예술가' 등 거리 활성화 사업을 맡고 탐라문화제에 참가한 적도 있다. 근래 예술시장 규모가 예전과 같지 않지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를 제외하곤 거의 쉬지 않은 채 20년 가까이 이어 왔다. 이중섭거리의 또 다른 명소로 불릴 만한 이유다.

작가의 산책길 종합 안내소에 산책길 곳곳에 흩어진 설치 작품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솔동산거리 서귀진지의 가치를 알리겠다며 지역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2017년 결성한 '솔동산어멍쉰다리모임'도 있다. 서귀진성 일원이 서귀포시의 중심지였는데도 홍보나 콘텐츠가 부족해 방문객의 발길이 드물다고 여겨 귀향인 등 솔동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통 발효 음료인 '쉰다리'(순다리)를 아이디어로 뭉쳤다.

그동안 이 모임은 서귀진지에서 토·일요일 쉰다리 제공, 평일 무료 시음을 진행했고 '서귀진성 쉰다리 축제'도 열었다. 최근엔 그같은 활동이 중단된 상태이지만 서귀포시의 도심 도보 코스인 '하영올레' 야간 걷기 행사 등에 참여하며 쉰다리를 나누는 봉사를 잇고 있다.

서귀진지 '솔동산어멍쉰다리 모임' 자원봉사 홍보물.



▶크고 작은 변화 속 지속 위한 방안 고민해야=작가의 산책길 해설사, 서귀포시 원도심 활성화와 작가의 산책길 활성화를 위한 지역주민협의회는 작가의 산책길, 서귀포관광극장에 이야기를 입히는 이들로 꼽힌다. '제주특별자치도 작가의 산책길 및 문화예술시장 운영·관리 조례'에 근거해 서귀포시의 지원을 받는다.

지역주민협의회는 단체를 수식하는 단어에서 그 목적을 짐작할 수 있다. 정방동, 송산동, 중앙동, 천지동 등 이른바 서귀포 원도심 지역민을 중심으로 2015년 창립했다. 서귀포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벌어질 때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소외되는 문제를 극복하자며 뜻을 모았다. 서귀포관광극장, 서귀포시 문화예술시장(작가의 산책길, 이중섭거리, 솔동산거리) 위탁 운영 사업자로 지정됐던 단체다. 현재 주말에 열리는 서귀포관광극장 공연, 체험 프로그램 등을 꾸린다.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들은 2011년 9~12월 서귀포시의 양성 과정을 수료한 36명으로 첫발을 디뎠다. 매주 화·목·토·일요일 오후 1시부터 작가의 산책길 탐방 예약자들과 동행해 해설을 하거나 이중섭미술관, 소암기념관, 기당미술관 등 작가의 산책길에 흩어진 시설에 배치돼 근무한다. 작가의 산책길 종합 안내소는 1950년대 초가가 있던 자리에 들어섰다. 동아리 창작 공간, 마을미술프로젝트 사무국, 유토피아커뮤니티센터 등으로 변모해 왔고 이제는 작가의 산책길 출발점이 되었다.

옛 서귀포관광극장을 찾은 방문객들이 문인화를 체험하고 있다.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전시실.

2011년부터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를 거쳐갔거나 머물고 있는 제주 안팎의 입주 작가들도 거리에 빛깔을 더하는 자산이다. 그 인원을 합치면 올해까지 70명이 넘는다. 카노푸스음악회, 솔동산음악회, 우리음악회, 한국생활음악협회 서귀포지부, 통기타 동아리 등 서귀포관광극장 무대에 올랐던 지역의 생활예술 단체들도 거리를 지켜 왔다. 서귀포관광극장에서 지난해 기준 54회에 걸쳐 공연을 하는 동안 약 6000명에 이르는 관람객을 불러오는 데 그들도 한몫했다.

한편에서는 이중섭거리, 솔동산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다짐했던 이들이 갈수록 동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부 단체들의 회원 수 추이를 봐도 그렇다. 오랜 기간 이중섭거리, 솔동산거리를 오가며 크고 작은 변화를 목격했던 사람들은 저마다 바람을 전했다. 서귀포예술시장에서 만난 셀러는 아트 마켓을 지속하고 육성하는 방안에 서귀포시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 내부에서는 출범 초기 외국어 안내를 포함해 단 두 차례 배출했던 인력을 여태 운용하는 탓에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며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송산서귀마을회에서는 얼마 전 이중섭거리 구간 확대, 근대 건축물 보존 등을 서귀포시에 건의했다.

지역에서 추진 중인 여러 사업들이 정당성을 확보하고 실효성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지역민들의 지지와 참여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중섭거리, 솔동산거리에 있는 이름난 문화 시설만이 아니라 거기에 깃든 사람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글·사진=진선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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