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제주의 전통 잔치문화에는 '괴기반'과 마을'도감'이라는 두 가지 독특한 요소가 있다. 이는 단순한 음식이나 역할을 넘어, 제주인의 평등 의식과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제주 전통방식의 '괴기반'은 '고기접시'를 의미하며, 한 접시에 돼지고기 수육 3점, 수웨(순대) 1점, 둠비(마른 두부) 1점을 담아 제공했다. 괴기반의 가장 큰 특징은 남녀노소,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양이 배분된다는 점이다. 특히 마을 도감은 돼지고기를 넓적하고 풍성하게 보이도록 칼을 눕혀 비스듬히 써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적은 양의 고기로도 많은 사람을 대접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노련한 솜씨가 요구된다.
원래 한 마을의 도감은 혼례와 상례에서 모든 의식을 총괄하는 감독관이다. 도감의 역할은 단순히 고기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양의 고기로 최대한 많은 하객에게 공평하게 대접하는 데 있다. 도감은 상당한 권한을 지니고 있어, 잔치 주인조차 마음대로 고기반을 가져갈 수 없을 정도였다.
돼지고기 구입이 쉬워지고 생활 방식이 변화하면서 전통 잔치는 줄어들고, 괴기반과 도감의 역할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메뉴 구성은 여전히 제주의 경조사 음식문화에 남아 있다.
괴기반과 마을 도감 문화는 단순한 음식문화가 아니다. 제주가 각종 환난과 수탈의 과정을 겪으면서 어려울 때일수록 이웃끼리 서로 돕던 제주의 '수눌음 정신'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전통이고 질서이다. <박주연 제주특별자치도 식품산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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