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06)돌에-함민복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06)돌에-함민복
  • 입력 : 2025. 03.04(화) 02:2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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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함민복




[한라일보] 송덕문도

아름다운 시구절도

전원가든이란 간판도

묘비명도

부처님도

파지 말자



돌에는

세필 가랑비

바람의 획

육필의 눈보라

세월 친 청이끼



덧씌운 문장 없다

돌엔

부드러운 것들이 이미 써놓은

탄탄한 문장 가득하니



돌엔

돌은

읽기만 하고

뾰족한 쇠끝 대지 말자

삽화=배수연



평범한 언어를 부정하는 시어는 그만큼 본질을 포착하기 어려운 현실의 조건에 대한 예리한 반응이다. 돌에 새겨진 금석문 한두 줄은 사실 인간의 혀끝에서 나온 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인은 어쩌면 절망하는 시인인지도 모른다. 불치병처럼 새기기를 마다하지 않는 시정의 비석거리를 보라. 돌은 거짓말하는 세계를 바라보며 불멸을 추구하는 말들의 쓰레기장으로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생각하고 있다. 뾰족한 쇠끝에서가 아니라 바람과 눈보라 속에 문장이 돋아날 때까지 그냥 두라. 돌아갈 곳이 있는 자를 돌에 새겨 막아서지 마라. 그래서 돌 닳아 없어진 부분에 진실한 말이 있는 법이며, 부정의 힘을 내장하고 있는 시의 언어는 자신을 드러낼 때 가장 아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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