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11)선잠-박준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11)선잠-박준
  • 입력 : 2025. 04.08(화) 02:0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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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톡톡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삽화=배수연



"그해" 때문에 이렇게 많은 생각이 나는 건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잠에 든 것을 잊은 채 다시 눈을 감는 것도 생각이 보는 일이라 가능해진다. "그해"를 돌아보면 "우리"의 이미지들을 연결하고 있는 섬세한 끈은 탱탱하지도 어느 수렁에 빠지지도 떠돌지도 않는다. 축 처지는 법도 없다. 이어져 있다는 마음을 놓지 않는 정도이다. 그리고 그걸 "섣부름"이라 해도 "화음도 없는 노래"라 해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속뜻을 서로 주고받는다. 그게 기척을 내지 않으려는, 혹은 기척을 들으려는 '선잠'과 유추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새 녘을 바라보거나 다시 눈을 감아보려는, 살아보려는 조심스러움이 좋다. "어쨌든 오니까 좋네요" 같이 들리는 말들이 미색을 띠며 다가오는 시가 싫을 리 없다. 과거를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보여주려는 박준의 회상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감각들을 들을 수 있게 어떤 줄 하나는 항상 튕겨진 채 있다. 그걸 '연애'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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